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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ory Jul 27. 2024

은퇴 흙수저를 위한 일자리를 찾아서

낙동강가에서 들은 어두운 희망


1. 은퇴 후에 일자리 있나요


OECD 회원국 중 노인빈곤율 1위인 대한민국에서 흙수저 은퇴자들은 어떤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이미 은퇴했거나 은퇴당한 사람들이 모자란 생활비를 위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작년 가을, 부산의 사상구에서 열리는 강변축제에 갔을 때 줄지어 늘어선 수많은 부스 가운데 우연히 노인들의 일자리를 상담하는 곳을 발견했다. 구청에서 나온 것인지 사회복지 기관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지만, 여성 직원 두 분이 앉아 있었다. 마침 아무도 부스로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맑은 가을 하늘 아래 한가해 보이는 그들은 잡담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노인 일자리에 관해 궁금해진 나는 그들을 찾아가서 어떤 해결책이 있는가 듣고 싶어졌다.


"안녕하세요. 노인 일자리에 관해 상담 좀 할 수 있나요."

다소 심심한 듯했던 그들은 조금 밝은 표정이 되어서 쭈뼛거리며 다가선 나를 반겼다. 그들이 앉아 있는 간이 탁상 앞에도 내방자를 위한 접이식 의자가 있었으므로 나는 그곳으로 가서 앉았다. 상담사들은 나에게 먼저 신분과 일자리 상황을 확인하고자 했다.


"미국에서 여행을 왔고, 당장 일자리를 찾고 있지는 않지만 노인 일자리에 관해 알고 싶어서 왔다."라고 정직하게 대답할 수도 있었지만, 그럴 경우 혹시라도 그들이 대답을 회피하거나 나에게 거리감을 두고 성실하게 대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정말로 한국에서 은퇴를 앞둔 사람처럼 행세하기로 했다. 그래서 다소 불쌍한 얼굴 표정을 하고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아직 일하고 있는데요. 그래도 미래가 걱정되고 다가올 은퇴에 대비해서 은퇴 후에 어디에서 어떻게 일할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혹시 사상구에서 공적으로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연계해 주는 프로그램 같은 것이 있나요?"


상담사는 먼저 나에게 지금까지의 경력을 되물었다.

"젊을 때는 전문 사무직에서 일했고 현재는 작으나마 자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나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

"혹시 사무직 같은 것이 있나요? 기자생활도 했었고 일반 회사 사무도 알고 글도 좀 쓸 수 있습니다."

구청이나 공공기관은 흙수저 은퇴자들에게 대체로 단순노무직을 주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으므로 과거 경력이 있다고 해도 사무직을 제공할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들은 다소 가망성이 없는 눈빛으로 나를 보는 듯했다. 그러면서 아예 기대하지 말라는 듯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은퇴한 후에 노인들이 취업할 수 있는 사무직이나 전문직종은 없어요."

"아 그렇군요."

"특히 소기업이든 자영업이든 '사장'을 했던 사람들이 다른 사람 밑에 들어가서 일하는 건 쉽지 않아요. 아주 작은 기업이라고 해도 '사장 때'를 벗기가 어려워요."


"사장 때"라고 말하는 그들의 의도를 나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스스로 왕년에 잘 나갔다는 의식이 가득 찬 노인들을 자주 대했던 그들은 나에게 '허울 좋은 특권의식'을 버리지 않으면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뜻을 명확하게 밝히고자 하는 듯했다.


"아 그렇죠. 맞는 말씀입니다." 나는 서둘러 그들의 말에 동의했다.

"새로 일을 찾아서 하려면 과거의 전문직 또는 엘리트 의식을 모두 버리고, 다른 사람 밑에서 통제를 받으면서 일할 의지가 있어야 해요."

“아무렴 그래야죠.”


그들은 이미 자영업 사장 출신자들을 많이 대해서 그들을 잘 알고 있어 보였다. 한국은 특별히 자영업자들이 많은 나라이고, 그런 자영업들의 대부분은 영세하며 1인 또는 가족 기업에 불과하고, 그나마 오래 버티기도 어렵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은퇴 후 찾는 일반적인 일자리에 어디 편하고 전문적인 일이 많을까.




2. 흙수저 은퇴자.. 일자리 찾기 쉽지 않다


내가 진지한 자세로 앉아서 경청하는 모습을 본 후에 그들은 드디어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남성의 경우 아파트 경비가 가장 많다고 상담사는 말했다. 남성이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의 대부분은 ‘경비’ 업무다. 아파트가 많아서 그 부문에는 거의 언제나 취업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경비 업무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그들은 덧붙였다. 일자리를 찾는 노인이 너무 많아서 실제로 취직하는 것은 바늘구멍 찾기와 같다는 것이다.


“아파트 경비라고 해도 우습게 보면 안 돼요.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면, 열 번 내지 스무 번 정도 인터뷰해야 겨우 취직할 수 있어요.”


아파트 단지에 취업 문은 늘 열려 있는 편이지만 실제로 경비 일자리를 찾는 은퇴 남성은 10%도 안 된다고 상담사는 강조했다. "예전의 자존심을 확 낮추고 낮은 자세로 경비 자리라도 얻으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자존심 센 노인들은 그게 잘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또한, 경비 업무에는 은근히 ‘나이 벽’이 높다고 했다.

"65세가 넘으면 웬만해선 취업이 어려워요."

"나이 제한이 있군요."

"아 법적으로 그런 건 아니지만, 관리자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50대를 채용하고 싶어 하지, 누가 나이 많은 사람을 쓰려고 하겠어요."


맞는 말이다. 어느 관리자라고 해서, 자기보다 나이도 많고 체력도 달리고 왕년의 경력과 자존심을 내세우는 노인을 채용하고 싶겠는가.


그러나 한두 번 경비 업무를 하다 보면 그것도 '경력'이 되어서 다른 곳에서 경비로 취업하기는 점점 쉬워진다는 귀띔도 했다.

"그러니까 최대한 젊을 때부터 시작하면 좋아요. 한 50대부터 경비 경력을 쌓으면 그 방면에서도 베테랑이 돼서 훨씬 오래 버틸 수 있어요."




“또 다른 일은 뭐가 있나요?”

나는 나름대로 취재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주 잠시 뜸을 들이고 난 후에 대답했다.

“은퇴 남성의 경우에는 사실 일자리가 거의 없어요. 경비 외에는 주차 요원이나 할까, 아니면 운전 배달이나 요양원 노인들의 운전기사 자리가 가끔 나오기는 해요.”


요약하면, 은퇴 남성은 찾을 수 있는 일자리가 겨우 두세 가지밖에 없다고 한다.

경비와 운전.


운전을 잘하면 아파트나 식당 등에서 주차 요원 역할을 할 수도 있는데 그런 일은 아파트 경비에 비해 많지 않다고 한다. 그 외에 아픈 노인들을 태우고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주는 운전사 자리도 가끔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것은 모두 경력이 중요하다.


“그렇군요. 남성들은 참 어렵네요. 제 친구는 대기업 다니다가 은퇴했는데 얼마 전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얻었어요. 그것은 어떤가요?” (실제로 그 친구는 작년에 실기 과정까지 마치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것은 그가 대형 공기업에서 30년 넘게 일하고 나서 은퇴한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인 듯하다.)


노인들이 급증하는 만큼 요양보호사 또한 증가하는 것은 당연할 테고, 요양원 또는 요양병원에서 육체적 힘을 필요로 하는 남성이 많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기대하면서 나는 질문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상담사는 남성은 요양보호사로 일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거의 단언하듯이 대답했다.




3. 은퇴 후 남성은 여성에 비해 일자리가 없다


“현재 취직하는 요양보호사의 95% 이상은 여성이에요.”

상담사는 요양보호사 파견 에이전시에서 선호하는 사람은 남성이 아니고 여성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요양보호사는 보통 하루에 세 시간 일해요. 그리고 한 달에 70만 원 벌어요.”

“일주일에 닷새 일하면 한 달에 이십일 정도 일하는 것이고, 70만 원을 번다면 시간당 만원 정도 번다는 말인가요?”

“그렇죠. 최저임금과 비슷해요.”

“그럼 하루에  3만 원 정도 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요양보호사에게 점심 식사 같은 혜택이라도 주나요? 교통비는요? 점심 먹고 교통비 내느라 만원 정도 쓰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는데요.”

“그런 혜택은 없어요. 자기가 알아서 먹고 다녀야 해요. 65세 이상은 교통비가 무료잖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요양보호사는 주로 자기 집 근처에서 일해요. 그래서 아침 먹고 걸어가서 세 시간 일하고 집으로 걸어오는.. 그래야 온전히 3만 원 버는 거죠.”


그렇다.

그런 사람이 밖에서 만 원짜리 점심을 먹으면 얼마나 아까울까.


“드물긴 하지만, 체력이 좋으면 오전과 오후에 각각 세 시간씩 일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럼 한 달에 140만 원을 버는 거지요. 그런데 요양보호사 일이 그리 만만하지 않아요. 특히 처음에는 힘들어요. 아픈 노인들을 돌보기가 쉽지 않거든요. 여성들은 비교적 그런 일을 잘 참고 하지만 남성 노인들은 잘 못 참아요. 그래서 요양보호사 파견 에이전시에서 여성을 선호하는 거지요.”


나는 상담자의 말이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남성들이 하루에 세 시간 일하고 한 달에 70만 원 받으면서 밥 사 먹고 담배 피우고 술 마시면 무슨 돈이 남을까. 차라리 여성이라면 그 돈 받고 밥도 해 먹으면서 알뜰살뜰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여성으로 넘어갔으므로 나는 여성 노인 일자리에 관해서 더욱 자세하게 알고 싶었다.



“요양보호사 외에 여성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또 뭐가 있지요?”

“환경미화원도 있어요. 주방보조도 있고요. 청소가 필요한 건물은 많아서 청소 일자리도 많은 편이고, 식당도 많으니까 힘들기는 해도 주방보조도 가능해요. 그런 일은 여자들이나 하지, 남자들은 못해요.”


나도 많이 봤다. 아파트와 상업용 건물에서, 또 길거리와 공원에서 청소하는 사람들. 건물 바닥을 쓸고 닦고 남들이 버린 휴지와 담배꽁초와 플라스틱 병 등을 청소하는 사람들. 지하철 역사에서 바닥에 붙은 껌을 떼어내고 지저분한 자국들을 지워내고 공원에서 잡초들을 잘라내는 사람들.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고 식기를 닦고 식당 바닥을 청소하고 때로는 술에 취한 남성들의 기분도 맞춰주고 음식을 나르기도 하고 주인이 없으면 돈 계산도 해주는 사람들. 실제로 그들은 거의 모두 여성들이었다.


그런 환경미화원들과 주방보조도 주로 노인 일자리 알선이나 직접 방문 인터뷰를 통해 일자리를 얻은 것이다. 거의 모두 시간당 만원의 임금으로.


"아 말씀을 들어보니까, 남성 은퇴자들은 경비 외에는 할 일이 거의 없는 것 같군요. 그나마 여성이 좀 더 낫고..."




“실제로 일자리 찾고 있는 거 아니죠?”

조금 우울한 얼굴 표정으로 내가 대화를 마치려고 할 때 상담사가 말했다.  어쩐지 일자리를 찾는 사람 치고는 절실함이 없어 보이고 여러 일자리에 관해 자세히 묻는 것이 남과 다르다고 느낀 것이다. 상세한 설명을 해준 그들에게 나는 예의를 갖추고자 사실대로 밝혔다. 여행 중인데, 우연히 노인 복지 상담 부스를 보고 상담하게 됐다고.


“어쩐지 달라 보이더라고요.”

“친절하게 자세히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은퇴 후 일자리 찾는 것에 관해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 자리를 떠나면서 어쩐지 마음이 무거웠다. 은퇴 후에 먹고살기 위해서, 또는 용돈이라도 벌기 위해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노인들은 어디에 가서 일할 수 있을까. 은퇴 후 그 길고 긴 노후 시간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은퇴 후 개인들이 이런 절벽에 부딪히게 될 때 국가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흙수저 은퇴자들을 위한 별다른 희망을 찾지 못한 채 나는 축제 분위기가 떠들썩한 공원으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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