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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ory Aug 20. 2024

'맛집'을 찾는 그대에게

'트루맛쇼' - 맛집은 어떻게 알려지는가

TV와 유튜브 등 미디어를 통해 ‘맛집’으로 소개되는 식당은 정말 음식을 맛있게 할까.


2011년 개봉되었던 다큐영화인 ‘트루맛쇼(The True-Taste Show)’는 맛집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들이 얼마나 상업적 술수로 만들어져서 시청자를 우롱하는지 진지하고 적절하게 보여주었다.


MBC PD 출신인 김재환 감독의 다큐영화 팀은 맛집 소개 프로그램을 실제로 경험하기 위해 경기도 일산의 한 쇼핑몰에 직접 식당을 차리고 SBS의 ‘생방송 투데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맛집으로 소개되는 과정을 취재했다. 이 과정은 맛집의 모든 것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또 그것이 영화를 만든 목적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TV 방송에 소개되는 맛집이 어떻게 탄생하고 소문은 어떻게 전파되는지에 관해 시청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 영화는 TV에 소개되는 식당의 대부분이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허구적 광고일 뿐 진정한 맛집으로 평가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매년 수많은 식당이 문을 열었다가 금세 사라지는 현실에서 순전히 돈을 써서 맛집이 소개되고 소비자들이 거기에 휘둘리는 현실을 고발하는 매우 흥미롭고 유익한 자료이므로 여기에 다시 요점을 정리한다.


영화 ‘트루먼쇼’가 조작된 세계에서 한 인간을 몰래 보는 ‘쇼’를 진행한 것에 빗대어, 이 영화는 ‘트루맛쇼’라고 이름을 지은 듯하다. 진짜로 맛집을 둘러싼 ‘쇼’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까.



1. 돈의 힘


KBS, MBC, SBS 등 TV 방송은 연간 1만 개 정도의 식당을 소개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 2010년 3월 둘째 주 지상파 방송에 소개된 식당 개수는 하루에 177개이며, 1년으로 환산하면 9229개에 이른다. 201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매일 515개의 식당이 문을 열고, 474개의 식당이 문을 닫는다. 대부분의 맛집 소개는 언론사의 돈벌이 수단이지, 제대로 된 맛집을 엄격히 검증하여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2. 광고언어의 마술


식당들이 광고하는 대표적인 단어인, ‘원조’ ‘3대’ 등은 거의 모두 가짜다. 그런 단어는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가짜 광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광고업자들과 방송업자들과 방송 섭외 브로커들은 최대한 자극적인 단어를 이용하여 소비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려고 노력한다.


맛집으로 방송에 소개되는 식당에서 보여주는 음식은 실제로 파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두 일시적으로 광고하기 위한 일용품일 뿐이다. 냄새와 맛이 전해지지 않는 스크린에서만 보이는 음식이 맛있어 보이도록 꾸며진 것이다. 거기에서 그 음식이 맛있다고 말하는 고객도 동원된 알바에 불과하다.


3. 브로커와 작가의 힘


맛집으로 등극하기 위해 식당은 방송 섭외 브로커를 동원한다. 식당업자들이 방송과 직접 연결될 수 없는 현실에서 그런 브로커들을 통해야 방송에 연결되고 눈에 띄는 메뉴를 소개하는 것도 쉬워지기 때문이다. 방송사들도 매주 방영되는 프로그램 내용을 채우기 위해 브로커를 이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전문 브로커들은 식당 소개를 위해 ‘특별’ 메뉴까지 개발해준다. 예를 들면, 방송에서 소개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캐비어 삼겹살’ 같은 경우다. 삼겹살에 캐비어를 얹어서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한 음식으로, 비싼 캐비어가 고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해당 식당은 방송사와 브로커의 요구에 따라 그 메뉴를 겨우 한 달간 만 제공했다고 한다. 거기에서 사용된 캐비어마저 철갑상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캐비어 대용으로 사용되는 북대서양의 다른 어종 새알고기였다. 그것은 스웨덴 제품이긴 하지만 한 캔에 3000원 하는 저렴한 어란이다.



4. 한국인의 입맛 수준


이 같은 실태를 놓고, 식품과 식재료 전문가들은 한국인들의 입맛 수준이 방송의 상업성에 휘둘리는 수준에 불과해서, 그 정도 광고만으로 쉽게 속아 넘어간다고 말한다. 방송에서 소개된 ‘맛집’이라고 하면 수많은 소비자들이 앞뒤 안 가리고 몰려든다.


수많은 사람드이 여행을 갈 때마다 굳이 인터넷에서 ‘맛집’을 찾고, 그런 집을 찾아가서 한 시간씩 줄을 서서 음식을 먹는다. 그들 중 다수는, 자신이 과장광고의 희생자임을 모르는 채, 음식이 나오면 거의 언제나 먹기에 앞서 사진을 찍고 SNS에 그것을 과시한다. 어쩌면 굳이 먼 곳을 찾아가서 오래 기다렸다가 먹는다는 이유만으로도 음식 맛이 있을 법도 하다.


5. 대본과 가짜 손님과 연기


이런 맛집 소개 방송은 때때로 소비자들을 속이기 위해서 식당 주인이 "방송 출연을 싫어한다"고 ‘쇼’를 하기도 한다. 모두 미리 짜고 하는 ‘고스톱’과 같다. 식당 주인이 처음에는 방송 출연 안 한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결국 한 가지 ‘비밀 재료’를 감춘 채 요리과정을 보여주는 설정은 방송이 애용하는 전형적인 방송의 속임수다.


식당 소개 방송에 나오는 손님들도 모두 가짜다. 일부는 출연료를 받기도 하지만, 대체로 호기심과 함께 맛집을 찾는 무료한 사람들을 불러서 음식을 공짜로 대접한다는 식으로 방송에 동원하는 식이다. 그들이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하는 말은 모두 대본에 적혀 있고, 때로는 미리 연습까지 해서 방송을 짜 맞춘다.


예를 들어, 이들은 음식이 나오면 박수를 치면서 환호하는데, 모두 미리 연습한 대본에 불과하다. 가짜 손님들은 뜨거운 음식이 ‘콘셉트’이면 뜨겁지 않아도 뜨겁다고 말하고, 단짠 음식이 ‘콘셉트’이면 또 그렇게 표현해야 한다.


6. 가짜 재료


식당 측에서 맛있어 보이는 수육을 놓고 ‘국내산’이라고 해도 수입일 때가 많고,  생선이‘ 자연산’이라고 해도 양식장 산물일 때가 많다. 어차피 스크린 상으로 판별 불가능하므로 거짓말이 아주 자연스럽고 일상이다.

영화가 고발하는 맛집 프로그램은 매우 많지만, KBS의 ‘VJ 특공대’와 SBS ‘생방송투데이’가 대표적이다.


방송작가는 식당이 맛집이라고 소개하기 위해 소비자를 현혹하기 쉬운 자극적인 메뉴를 만들어주고 레시피를 주며 대본까지 만들어준다. 나아가 스크린에 담기 위해 식당 메뉴판에 “‘죽든지 말든지’라는 문구를 적어주세요.”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면 손님은 극도로 매운 음식을 먹으면서 땀을 흘리고, “처음에는 이걸 왜 먹었나 하는데, 나중에 생각나는 음식이고,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런 ‘속임수’ 방송을 위해 식당이 지불해야 하는 가격은 보통 1천만 원.

물론 지금은 영화를 찍을 당시에 비해 가격이 올랐을 것이다.


맺는말


오늘도 수많은 소비자들은 ‘맛집’의 노예가 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고 일부러 먼 곳에 있는 식당을 찾아가고 거기서 줄을 서서 오래 기다렸다가 음식이 나오면 SNS용 사진을 박고 나서 겨우 한 끼를 먹는다. 자신이 소비주의적 과장광고의 희생자 겸 광고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다.


종종 그 ‘맛집’의 음식이 정말 맛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자신이 광고의 희생자가 되었음을 깨닫지는 못한다. 많은 경우 실은 맛있다고 느끼는 것조차 ‘조작’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소비자들에게 맛은 그렇게 창조되고 길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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