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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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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ory Aug 11. 2023

허드슨 강가의 항공모함

허드슨 강가 웨스트하이웨이에서 본 항공모함 Intrepid

시퍼런 허드슨 강가에 매달려

도도한 눈길로 관광객을 유혹하는

해양항공 박물관이 되어

잔인한 기억을 감춘 낡은 항공모함.


2차대전에는 일본군과

베트남전에는 베트콩과

치열한 전투 끝에 난파했지만

운좋게 살아 남아


그 언젠가 피눈물도 없이

수많은 사람을 살상했을

구식 항공기들을 갑판에 늘어놓고

유목민 같은 구경꾼들의 적선을 바라는

한때는 사납고 용맹스러웠던 저 배.


그때는 왜 그토록 처절하게 싸웠던가.

자유와 평화, 애국심과 인류애.

탐욕스럽고 공허한 대의 아래

머나먼 이국땅에서 스러지던 투사들.


아,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사무치게 그리운 나의 연인이여.

망망대해에서 그리던 꿈같은 고향.


철판에 고막을 뚫는 굉음이 울리면

붉은 피 흘리며 고꾸라지던 전우들.

이름 모를 낯선 바다에 수장되던 병사들.


절규와 비명이 뒤섞인 수많은 사연은

강 너머 붉은 노을 속으로 저물고

옛 전쟁은 색바랜 추억이 되어

침묵의 강으로 침몰한다.


오늘도 거대한 항공모함은

촌스럽게 두리번거리는 관광객에게

하릴없이 무심한 인사를 건네며

하이라이즈 맨해튼의 애완견처럼

긴 줄에 묶여 강물에 흔들린다.



* 일명 'Intrepid' 항공모함은 2차 대전 중 태평양 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여했다가 1974년 난파된 후 인양되었으며, 퇴역한 후 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1982년부터 맨해튼 허드슨 강가에 묶여서 갑판에 구식 항공기들을 전시한 채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현재 해양항공우주 박물관으로서 매년 백만 명 정도의 관광객을 맞는 맨해튼의 관광 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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