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 (1)
학교와 선생님 - 여명
1.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라는, 악행의 소용돌이를 경계하는 속담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어느 순간 잘못을 저지르지만, 그 잘못을 오랫동안 반복하면서 더 큰 잘못으로 발전시키지는 않는 법이다. 그랬다면 사회는 진작에 아수라장이 되어서 인류는 스스로 멸망하여 사라졌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내가 저지르는 잘못을 알았지만 한동안 고칠 수 없었고, 그 어둠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러나 시간이 가고 환경은 바뀌면서 생각은 발전하고 양심은 되살아나며 새로운 빛을 발견하면서 용기도 솟아난다. 삶은 그렇게 개혁되며, 한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어느덧 그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게 된다.
엄마의 지갑에서 돈을 훔치는 것.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저지르는 가장 고의적이고 의식적으로 행한 죄악이었다. 그것은 내가 때때로 세 살 터울인 작은누나와 다투거나 부모님의 말을 안 듣거나 반찬 타령을 하거나 동네 친구들과 싸우거나 떼 지어 지나가는 개미들을 마구 밟아 죽이거나 공연히 예쁜 꽃을 따서 버리는 것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나쁜 짓이었다.
이럴 때 나는 성선설 또는 성악설 중 어디에 해당될까.
사람은 본래 선하게 태어났지만 사회적으로 악에 물들기 때문에 교육과 훈련을 통해 선을 되찾고 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거나, 본래 악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교육받고 통제를 거쳐서 악을 억제해야 한다는 논리 가운데 나는 어디에 해당할까. 그런데 어떤 것이든, 사람은 결국 교육과 훈련과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마찬가지다. 자연적으로 놔두어서 늘 선이 발현되는 것은 아니고, 선함마저 불가피하게 사회적으로 악에 물들기도 한다. 가능하면 선이 발현되고 악이 억제되고 통제되도록 사회적 교육과 훈육은 필요하다. 그것이 더불어 사는 사회와 역사의 현실이고 진리이며 동서고금의 지혜이기도 하다
나는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악에 물들고 있었다. 그러나 나를 옥죄는 주변 현실을 나는 어떻게 극복하면서 선하게 살 수 있을까.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선을 되찾을 수 있을까. 출구가 막힌 어둠의 세계에서 나는 한동안 헤어 나올 수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리고 손이 떨리면서도 나는 엄마 몰래 지갑을 뒤졌다. 그럴 때 나는 내가 얼마나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나 스스로에게도 매우 굴욕적이고 비참한 짓이었다. 그러나 교실에서 매일 보는 선생님의 느끼한 얼굴, 나를 공개적으로 무시하는 말과 행동,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운 언어는 나를 더욱 궁지로 몰고 견딜 수 없게 했다.
엄마의 지갑에서 꺼낸 돈으로 나는 선생님에게 학용품을 계속 사가지고 갔지만 선생님은 밝은 얼굴이 되지 못했고 웃지도 않았으며 나에게 뭐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학용품을 받아서 책상 한 구석에 두었다. 나는 그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알 수도 없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엄마의 지갑을 몰래 열었을 때 항상 동전이 여유 있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 동전이 충분하지 않을 때 나는 엄마가 두 번 접은 지폐 뭉치에서 한 장을 꺼냈다. 그것은 동전과 달리 나에게는 매우 큰돈이었다. 엄마에게 들킬 것을 염려하여 나는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기 싫었지만 다른 방법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행위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나의 행위는 곧 발각됐다. 엄마는 지갑에서 돈이 없어졌음을 이내 알았으며, 합리적 추론을 통해 나를 불러서 앉혀 놓고 물었다.
“너, 엄마 몰래 지갑에 있는 돈을 가지고 갔니?”
겁에 잔뜩 질려서 나는 매우 비겁하게도 고개를 숙인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러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깊은 두려움과 절망 속에 나는 엄마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럼으로써 나의 죄악은 더욱 커져만 갔다. 죄는 죄를 낳았다. 엄마는 그저 잠시 나를 바라보고 나서, “나쁜 짓 하면 안 된다. 엄마 몰래 돈을 가져가면 안 돼.”라고 말했을 뿐 더 이상 나를 다그치거나 캐묻지 않았다. 엄마의 하얀 얼굴은 매우 슬프고 고단해 보였다. 나는 가슴이 철렁 가라앉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었으며,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 악의 세계로 들어선 나는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교실에서 선생님의 지속적인 무시와 은근한 협박을 겪으면서 나는 그다음 주에도 엄마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돈으로 사탕이나 과자를 사 먹거나 엉뚱하게 쓴 것은 아니다. 오로지 선생님에게 뭔가 해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엄마는 또다시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을 알아채고, 다시 한번 나를 불러 앉혀서 말했다.
“나쁜 짓 하면 하나님에게 벌 받아. 하나님도 알고 있고 엄마도 알고 있어. 나쁜 짓 하면 안 된다.”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의 두 손을 꼭 붙잡고 기도를 하셨다. 엄마의 기도 소리는 약간 떨리고 있었으며, 그 소리를 듣는 내 마음도 떨리고 있었다. 엄마가 기도하기 전에 이미 나는 내가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서 악의 화신이 되었으며 어둠의 세계에 갇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다시 낮과 빛의 세계로 되돌아갈 수 있는지, 어떻게 어둠의 세계를 탈출할 수 있는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했다.
당신은 내가 멍청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왜 엄마에게 정직하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멍청하고 비겁하고 매우 악한 사람이었다고.
하여간 그때 나는 엄마에게 내가 몰래 돈을 가지고 간 이유가 선생님에게 학용품을 사다 주기 위한 것이라고 변명하지도 않았다.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엄마는 이미 나에게 선생님에게 아무것도 갖다 주지 말라고 말했고, 나는 그 말을 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깊은 어둠의 굴레에 갇혀서 아무 말도 못 하는 병에 걸린 듯했고, 악의 자녀가 된 듯했으며, 어른들과의 대화에서 단절되어 있음을 느낄 뿐이었다.
사정이 어찌 됐든, 엄마는 나를 나무랐지만 그것은 격렬하지도 않았고 반복적이지도 않았으며 특히 나를 때리지도 않았고 아무에게도 나의 악행에 관해 말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저 매우 슬퍼했으며, 나에게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고 훈계하고 내가 또 그런 짓을 할까 봐 경계했다.
나는 엄마의 슬픈 눈을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그럼으로써 나는 비로소 더 이상 선생님에게 학용품을 갖다 줄 형편이 못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화장대 위에 지갑을 두는 것을 경계하고 집안에서 다른 식구 모르게 나를 감시했다. 그럼으로써 나는 더 이상 엄마의 지갑에서 돈을 꺼낼 수 없었으며, 선생님의 공공연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아무것도 사다 줄 수 없었다.
2.
그러나 어쩌면, 그보다 먼저 내가 깨닫게 된 것은, 내가 그렇게 사다 준 학용품들이 나에 대한 선생님의 부당한 무시와 비난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학용품만으로는 결코 선생님을 만족시킬 수 없었는데, 그때 나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고 그저 선생님이 나를 싫어한다고 여겼다.
아무튼 결국 그는 내가 학용품마저 사다 줄 형편이 못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그에게 그런 학용품 따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었지만, 선생님은 갑자기 나에게 학용품에 관해 말하지 않기 시작했다.
“학용품 그만 가지고 와.”
어느 날 방과 후에 그는 드디어 나에게 그렇게 짧게 말했다. 내 귀로 그 말이 마치 꿈처럼 들렸다.
“그만 가지고 와.”
'그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마음속으로 그의 말을 반복해서 되뇌었다.
'그만...'
그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기 힘들었다. 다만, 그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이제부터 학용품을 사서 가지고 가는 일이 면제된다는 것은 확실한 듯했다. 그의 말은 내가 저지른 잘못을 이제 용서한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관용으로 인해 내 잘못에 따른 처벌이 면제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내가 저지른 잘못이 무엇이든, 그의 관용이 필요하든 안 하든, 그는 나를 어떤 의미에서는 '해방'시켜 주는 듯했다.
교실에서 나와 집으로 걸어가면서 골똘히 생각했다. 탈출할 수 없는 미로에 갇힌 생쥐와 같은 나를 선생님은 손을 뻗어 공중으로 들어 올려서 미로 바깥으로 내놓았던 것일까. 거대한 바위 밑에 깔려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던 나를 불쌍히 여겨 바위를 들어 올려준 것일까. 나는 갑자기 나를 누르고 있던 바위와 나를 옥죄고 있던 멍에에서 풀려난 듯 어리둥절한 느낌을 가지고 교실 밖으로 나와서 새로운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이렇든 저렇든, 드디어 압박과 구속에서 해방되고 악몽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한편으로는 기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동안 여전히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나에게 웃지 않았고 다정한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와 나 외에는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그는 굳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너처럼 눈치 없는 녀석이 반장이라니. 정말 한심하구나. 너처럼 답답한 놈은 처음 봤다. 도대체 말귀를 알아들을 줄 알아야지 반장이. 멍청하긴...”
아주 조용한 교실에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지만 나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나에겐 "그만 가지고 와"라는 그의 말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학용품을 그만 가지고 가도 된다는 생각에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내리막길인 학교 정문을 나서자 향기로운 공기가 흘렀으며 하늘로부터 여명이 비치는 듯했다
그러나 여전히 선생님의 차가운 말투가 마음에 걸렸다. 선생님이 나를 칭찬한 것도 아니고, 내가 예쁘다고 말했던 것도 아니었다. 피곤과 어둠이 겹친 그의 얼굴은 매우 차가웠고 나에게 했던 말은 낮고 무거웠다. 다음날부터 선생님은 정말로 아이들 앞에서 나를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더욱 차갑게 말하기 시작했다.
“반장이 멍청해서……”
“반장이 눈치가 없어서……”
“반장이 시키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반장이 뭐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
그는 수업시간에 시도 때도 없이 아이들 앞에서 이런 말을 서슴지 않고 했다. 그런 말을 할 때 특별한 이유는 덧붙이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나를 무시하는 말을 남발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붉어진 얼굴로 숨만 가쁘게 조용히 내쉬었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선생님을 보는 것도 그의 말을 듣는 것도 너무나 힘들었다.
나는 특히 “반장”이라는 말이 듣기 싫었다. 반장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반장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숨이 막히는 듯했고, 반장이 된 것이 원망스러웠으며, “반장 안 할래요”라고 크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말은 마음속에서만 맴돌 뿐 결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견디기 힘들고 괴로운 나날이 그 학기 내내 지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