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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더 늦기 전에

2024년 가을 여행 이야기

by memory 최호인

1.


내가 서울에 가기 전에 혁국은 전화통화에서 나에게 어디로 여행하고 싶은지 물었다.

2박 3일 여행이라 시간적 여유가 생겼으니, 전라남도로 갈 것인지, 강원도로 갈 것인지 선택하라고 했다. 모두 가보고 싶은 곳이지만, 이 여행에 앞서 겨우 1박 2일이지만 교회 친구와 남원-하동-여수를 다녀오기로 했으므로, 또다시 전라남도까지 내려가는 것은 힘들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강원도라고 하면, 나 개인적으로는 겨우 속초와 강릉 정도만 조금 익숙하게 들리는 이름이다. 2018년 여름에 다른 친구들과 함께 안동과 삼척을 여행했으므로 삼척도 조금 알게 되기는 했다. 속초와 강릉과 설악산은 대학 초기 때도 가본 적은 있다. 그러나 워낙에 오래전 일이라 거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운전 시간도 고려해야 하니까 강원도로 가는 게 어떨까. 이번에도 네가 내내 운전할 거 아니야. 전라남도까지 다녀오려면 너무 운전만 많이 할 거 같아.”


작년 여행에서도 그랬지만, 혁국은 성격상 사흘 내내 혼자서 운전할 것이 분명했다. 책임감과 자립심이 강한 사람은 웬만해선 자신의 궁색과 힘듦을 굳이 밖으로 나타내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남에게 넘기려 하지 않으며, 면책을 위해 남에게 책임을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의 성격이기도 했다.


나는 이번 여행에 참가하는 다른 친구들의 의견도 들어보라고 덧붙였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에게 강원도는 조금 낯설고 이색적인 곳이고, 전라남도는 뭔가 애달프고 그리운 곳이다. 그러나 어디가 됐든, 그들과 함께 여행할 것이라는 계획만으로도 나의 한국여행은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재관은 겨우 2박 3일 여행에서 전라남도까지 가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의견을 밝혔다. 오가는 데 운전하는 시간만 오래 걸린다는 말이었다. 당연히 이해되는 말이었다. 상국은 언제나 그런 것처럼 별다른 의견이 없었다. 그가 진정으로 생각하는 대답을 듣기 위해 기다린다면 정말로 한참 걸리는 일이라, 우리는 결국 재관의 주장에 따라 강원도로 여행하기로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때 강원도라고 해서 여행지가 강원도로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혁국에게 강원도에서 여행할 장소가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예전처럼 구체적인 여정을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단양으로 먼저 갔다가, 이틀 밤 내내 사북에서 잘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틀간 한 군데서 자고, 낮에 그 근처 여기저기를 다닌다는 계획인 듯했다. 나는 그곳의 지리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아서, 그가 말하는 "여기저기"가 어디인지 상상할 수 없었다.


숙소가 있다는 사북도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고, 그 근처에 무엇이 있는지, 또 유명한 게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사북이라고 들었을 때 내가 오로지 기억할 수 있는 것이라곤 ‘사북 탄광 사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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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실, 이번 여행기록에 관해, 강원도 여행 도중에 차 안에서 혁국과 재관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에게 말했던 것이 있다.


“너 또 이번 여행하고 나서 여행기 쓰는 거 아니야?”

나는 아무 주저함이 없이 대답했다.


“아니야. 이번에는 안 쓸 거야. 전혀 쓸 계획이 없어.”

그때 그렇게 말한 것은 내 진심이었다. 그때는.


예전에 친구 Y와 함께 제주도에 일주일간 다녀왔을 때도 나는 여행기를 쓰지 못했다.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여행기를 쓰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 있다. 주로 그 상황이나 배경에 관한 나의 경험이 너무 모자라고 쓸 수 있을 만큼 아는 정도가 낮을 때 그렇다. 제주도에 관해서도 그랬다. 나에게 제주도가 너무 낯설고 아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뭔가 쓰는 것은 어렵다고 느꼈다.


뭔가 봤다고 해서 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쓰고 싶은 것은 아니다.


뭔가 봤다고 해도, 나름대로 그것에 관해 쓰고 싶은 욕망이나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다면, 설사 그것을 인터넷에서 조사한다 해도 쓸 수 없다. 영혼이 없이 베껴쓰기는 용납될 수 없다. 나에게는 제주도라는 장소도 언어도 모두 낯설어서 섣불리 쓰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낯선 곳도 낯선 곳 나름이라, 어떤 곳은, 가령 같은 섬이라 해도 진도처럼,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제주도는 그렇지 못했다.


그것은 어쩌면 여행에 참여한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행지의 새로운 정취에다 그들과의 추억이 곁들여져서 쓰고자 하는 욕망이 살아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 강원도 여행에서는 그곳이 낯설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해서 나는 여행기를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강원도는 왠지 나에게 가깝게 다가서지 않았다. 게다가 혁국은 우리가 어디를 방문할 것인지, 우리가 갈 곳에 유명한 무엇이라도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여행을 출발하기 전부터 나는 아마도 여행기를 쓰지 않게 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여행길에 아주 유명한 관광지라든가 뭔가 놀라운 것이 있다면 기록하기는 조금 더 쉬워진다. 그런 것들에 관해서만 써도 한 묶음은 될 테니까.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는, 영주 부석사가 포함되었는데도, 딱히 그런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별다른 특징이 없거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없는, 소소한 여러 가지를 보면 거기서 무엇을 느꼈는가를 기억하기도 어렵고 그 모든 것을 어떻게 기록해야 하나 고민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만약 진정 기록하기로 한다면, 강원도에 앞서 여행했던 남원-하동-여수는 차라리 기록하기가 조금 더 편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눈에 확 뜨이고 뇌리에 도장이라도 찍히는 듯한 장면들과 그 장소에 잘 알려진 스토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이 순간까지도 그 여행을 기록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두 달 정도 있다가 쓰는 거 아니야? 아무래도 그럴 거 같은데...”

내가 여행기를 쓰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자, 재관이 웃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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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놀랍다. 지금 이렇게 내가 여행기를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재관은, 알고 보니, 참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이다. 결국 내가 이렇게 여행기를 쓰게 될 것을 그는 어떻게 감지했을까. 나도 모르는 것을 그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을까. 정말로 두 달 정도 지나서 이렇게 여행기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 먼저 시차를 극복하느라 일주일 이상 걸렸고, 장기 여행에 지친 몸을 회복하는 데 한 달은 걸렸다. 뉴욕의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오자 내 마음은 다시 근질거렸다. 그리고 이번 한국 방문 기간에 친구들과 나눈 즐거운 시간과 그 우정에 대한 보답으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좋으며, 이렇게 해서 우리의 우정의 한 때를 길이 남기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또한, 다른 동기 친구들에게도 이런 방식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우리의 우정을 길이 남기도록 하자고 격려하고 싶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다른 여행기를 쓸 때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어쩌면 이런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것은 결국 쓰고 싶은 나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쓰지 않으면 아쉽고 심장이 간질거린다. 머리에서는 여행 장면들이 떠오르고, 그것을 감정과 생각을 섞어서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래서 내 생각이나 글이 때로는 마음에 안 들고, 때로는 속상하고, 때로는 머리를 쥐어짜 내는 고통이 따르기도 하지만, 이렇게 다시 한번 기꺼이 자판기를 두드린다.


더 늦기 전에. 더 늙기 전에.


나이 들면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다음’이나 ‘나중’은 없다.

그런 말은 시궁창 속으로 던져 버려라.

그런 말은 젊을 때나 하는 것이다.


죽기 전에 몇 번 더 본다고, 아니 어쩌면 한 번도 볼 기회가 없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말 아끼고 얼굴 아끼고 시간 아껴서 도대체 뭐에다 쓴단 말인가. 아직도 이런저런 사정 살피느라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단지 여러 가지를 귀찮아할 뿐인 자신을 탓해도 싸다.


우리는 자신에게 너무 귀찮아한다.

하여, 소리를 잊고 장면들도 생각나지 않기 전에, 굳이 힘을 내어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한 번 더.”



https://www.youtube.com/watch?v=rE65fypXBfs

Solitude's my home - Rod McKu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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