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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고시텔과 공동주거 시설

2024년 가을 여행 이야기

by memory 최호인

1.


한국은 여행객을 위해 호텔뿐 아니라 다양한 숙박시설이 발전되어 있다. 이런 곳은 한국밖에 없을 듯하다. 수많은 호텔들과 에어비앤비 외에도 일주일이나 월 단위로 숙박할 수 있는 곳도 많다.


빈 방을 얻을 수도 있고, 풀옵션을 갖춘 원룸 또는 아예 아파트나 단독 주택을 얻기도 편하다. 적어도 내가 사는 뉴욕 근처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숙박시설, 또 매우 쉬운 계약을 찾고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내가 여행했던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해도 요즘 한국, 특히 서울에서 프리미엄 고시텔이나 원룸의 단기임대 가격은 매우 빠르게 뛰어올랐다. 프리미엄 스테이나 고시텔의 월세는 꾸준히 올라서 어떤 사람들은 ‘고시텔’ 월세가 빌라의 월세와 다름없다고 한다. 요즘고시텔은 고시생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넘어서 간편한 미니멀 라이프를 즐기고 '적당한' 직업을 가진 싱글들을 위한 숙소로 진화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서울에서 고시원 방의 가격은 30만 원 정도부터 시작한다. 오래된 고시원에는 창문도 없고 겨우 1평 반 크기의 방도 많다. 그런 곳에는 가난한 청년뿐 아니라 주로 기본소득에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노인들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장년층이 장기 숙박하는 경우가 많다.


그랬던 고시원 방 월세가 이제 ‘프리미엄’, ‘레지던스’, ‘스테이’ 등 새로운 부가적 이름을 달고 월 100만 원 정도까지 치솟았다. 이것은 물론 주로 서울 시내에서 이뤄지는 일이다. 그 정도 월세를 내는 방은 사실상 호텔 방과 비슷한 수준이다. 방의 크기도 건물 시설도 그만큼 개선되었다.


이런 방이 호텔의 그것과 다른 점은 방안에 작은 부엌이 갖춰져 있고 심지어 빨래기계와 건조기도 설치되어 있다. 게다가 그런 곳은 대체로 신축 건물이며 입주자들의 친목과 편의를 위해 세련된 공용 공간을 뽐내기도 한다.


그런 곳은 돈이 있다고 해서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입주자의 나이와 직업까지 엄격하게 선별하기도 한다. 나이와 직업 등에서 공공연하게 ‘차별’을 내세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차별을 혐오하는 전통을 발전시킨 미국사회라면 이런 식으로 ‘차별’을 공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하여간 그런 시설은 대체로 중장기 리스 계약을 체결하고 월세를 받고 있어서 나 같은 여행객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특히 나는 나이부터 차별 대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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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반적으로 말해서, 여행객은 ‘월세’를 구할 수는 없다.

빌라의 원룸에 입주할 수도 없다. 부동산 계약이 어렵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월세의 리스 기간은 보통 2년 정도이고, 곳에 따라서는 반월세인 곳이 많아서 높은 보증금을 낼 수도 없다. 그에 반해 고시텔은 보증금이 매우 낮고, 계약 기간은 한 달이며, 별일이 없는 한 매월 자동 연장된다.


풀옵션 원룸을 구할 수 있는 다른 사이트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에어비앤비 사이트다.

에어비앤비에서 풀옵션 원룸의 한 달 입주 가격은 프리미엄 고시텔 방값에 비해 두세 배 정도에 이른다. 그래서 한국에서 일주일 정도만 여행하는 사람들은 에어비앤비나 호텔에서 숙박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나처럼 혼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사람으로서 숙박 비용을 아끼려면 고시텔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방이 좁은 것만 받아들일 수 있다면 말이다.


여러 해에 걸쳐 한 달씩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나의 고시텔 살이는 어느새 수개월에 이른다. 이런 고시텔 방도 자주 사용하다 보니 친숙해지고 정이 든다. 사실 방이 좁기는 하지만 여행할 때 짐이 별로 없는 나 같은 여행객에게는 이런 방이 편하다.


전세나 월세에 비해 보증금이 압도적으로 저렴하고 리스 기간도 한 달에 불과하니, 아무 때나 나가고 싶으면 나가도 된다. 빨래기계와 건조기와 부엌 시설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방이 굳이 클 필요도 없다. 그런 시설을 모두 방 안에 들여놓으니까 방이 저절로 커져야 하는 것이다. 고시텔에서는 때때로 주방에서 다른 입주자를 만나 대화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낡은 고시원 시설은 권하고 싶지 않다. 숙박비가 낮아서 좋다고 해도 서울로 여행 오는 사람이 굳이 너무 좁은 곳이나 창문도 없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가. 나는 낡은 고시원 시설이 신속하게 개선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빈곤에 시달리면서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도 조금 더 인간적인 환경에서 거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을 위해서 지자체에서 재정적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지자체들이 공연히 낭비하는 공공예산이 적지 않다는 뉴스 보도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여간, 요즘 신축 프리미엄 고시텔은 방음시설도 양호한 편이고 냉난방 조절시설도 잘 되어 있다. 출입문과 자물쇠도 잘 꾸며져 있다. 고시텔에서 가장 아쉬운 것이 있다면 창문이다. 창문 밖으로 멀리 풍경을 볼 수 있으면 최상이겠지만, 건물들이 촘촘하게 붙어 있는 서울에서 그것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 고시텔이 보통 고층빌딩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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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런 공동주거 시설을 경험하고 보니, 개선하면 좋은 점들이 떠오른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요즘은 일인가구를 위한 간편한 공동주거 시설이 늘고 있다.


내가 바라는 바는, 이런 고시텔 방을 조금 더 크게 만들고, 공용시설을 개선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고급(?) 고시텔의 월세가 올라가는 것이 문제지만, 그런 수준의 시설은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는 사람들과 일인가구에게 아주 적격일 것이다. 공용 공간을 편리하고 안락하게 만들면 입주자들이 서로 친목을 교류하기도 좋다. 어쩌면 넓은 아파트에 고립되어 혼자 있는 것보다 훨씬 나을 수도 있다. 합리적인 가격을 바탕으로 개선된 공동주거 시설들이 더욱 늘어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강남역 고시텔 부근에는 식당이 정말 많다. 이것은 한국으로 여행 갔을 때 나처럼 매일 끼니를 사 먹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매력적인 요소다. 이 고시텔에서 강남역까지 가는 길에 마주치는 식당은 적어도 30여 개에 이른다. 그것은 역으로 바로 가는 길에만 그렇다는 것이고, 근처 골목들까지 생각하면 접근 가능한 식당은 수백 개로 늘어난다.


이 지역은 직장인들이 모여드는 공간이라 주말이 되면 한산해지지만 주중에는 점심과 저녁이 모두 바쁘다. 그러니 어떤 식당이 장사가 안 되어 망해서 나간다 해도 금세 다른 식당이 들어온다.


강남역 고시텔로 겨우 1년 만에 돌아온 것인데, 작년에 보았던 가게들 중 여러 개가 바뀌었다. 고시텔 아래 있었던 미용실은 식당으로 바뀌었고, 그 맞은편에 있었던 미니 슈퍼마켓은 문을 닫았다. 장소가 장소니 만큼, 슈퍼마켓이 있던 자리에서 다른 가게가 입점하기 위해 내부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이 가게는 저 가게로, 저 가게는 이 가게로 서로 끊임없이 탈바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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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렇게 많은 식당과 편의점과 술집과 카페가 모두 어떻게 살아가는지 나는 늘 걱정되고 궁금하다.

한국사회에서 자영업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가련하고 고달프고 고된 일인가.


나는 한국을 여행할 때마다 거리에 널린 수많은 작은 가게를 보면서 깊은 감회에 사로잡힌다. 소규모 자영업이 이렇게 늘어난 데에는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의 고용 능력이 낮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에 전염병처럼 만연한 조기은퇴도 큰 몫을 차지한다. 겨우 50대 초에 은퇴한 사람들의 재정상황을 고려해 보면 한국사회에서 자영업이 늘어나는 게 이해될 수밖에 없다.


늙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수십 년이나 남았는데, 현재 가지고 있는 돈을 탕진하고 나면 어떻게 살 수 있는가. 자신의 노후를 자식들이나 국가가 해결해 줄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의식은 조기 은퇴자들을 ‘준비되지 않은’ 무리한 자영업 투자로 유혹한다. 설마 먹고살지 못하기야 하겠냐는 생각에서 과감히 창업을 선택한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자영업을 개업하면 거의 다 5년 내로 망한다는 말이 전혀 헛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모든 사람이 안다. 개중에 한두 가게가 살아남거나 대박이 나는 것을 보면서, 혹시라도 자신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꿈꾸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또 그들을 유혹하는 프랜차이즈 업체들과 중개인들과 은행들은 얼마나 많은가.


일부에서는 그리하여 ‘준비된’ 창업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결코 ‘준비된’ 창업까지도 격려할 수 없다. 그것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정답을 말할 형편은 안 되지만, 수많은 편의점과 카페와 식당을 볼 때 과도한 자영업 집중은 대한민국의 최대 비극 가운데 하나이고 은퇴 후의 경제 위기이다.


국가는 노인문제와 자영업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다 해도 그 심각성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보수 정권이 집권하든 진보정권이 집권하든, 지난 수십 년간 경제는 발전했지만 자산 소유는 매우 불평등해졌다. 한국의 자산 불평등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심하다.


그러므로 정부는 자산의 재분배를 국가정책으로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나아가 경제와 교육 등에서 서울 수도권 집중을 해소해야 한다. 그런 정책 추진이 궁극적으로 노인문제와 자영업 문제의 심각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ySkwh7YOBsI Merci cheri (별이빛나는 밤의 배경음악) - Frank Pourc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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