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전도 (2)

대방교회 이야기

by memory 최호인

5.


종교, 그중에서도 특히 개신교는 전도를 크게 강조하고 있다. 전도에 적극적인 개신교인들은 (자신들이 믿는 기독교를) "땅끝까지 전파하라"라는 말을 자주 한다.


신약성경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8)라는 문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문자 그대로 믿은 나머지, 가톨릭과 개신교는 역사적으로, 특히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 이르러 유럽 바깥으로 폭력적이고 파괴적으로 미션 임무를 전개했다.


"땅끝까지(영어로는 to the ends of the world)"라는 문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 '땅'은 어디이고 그 '끝'은 어디인가를 생각한다. 그 성경 구절을 썼던 당시 저자가 상상했던 "땅끝"은 어디였을까. 그것은 과연 공간적으로 확정된 의미였을까.


고대 로마의 압제 시절에 유대인들 외에는 모두 이교도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또 아브라함 이래 가나안 지역을 신이 주신 땅이라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에게, "땅끝"은 어디일까. 과연 지구 끝까지, 또 온 나라 모든 사람들까지였을까. 도대체 세상에 땅끝이 있기는 한가.


하여간, 그러한 기독교의 미션 전통은 오늘날 과거의 폭력성을 많이 잃기는 했지만 여전히 다른 종교들에 비해서는 오만하고 공격적이다. 나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전도의 중요성을 배우기는 했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타인에게 자신의 신앙이나 신념을 전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개인들의 관계에서 부담스럽거나 위험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가까운 사이에서는 더욱 그렇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나는 교회가 가르쳤던 전도의 오만함과 무례함과 폭력성과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타인과 타 문화와 타 종교에 대한 이해나 존중을 결여한 채 교회의 오만과 독선, 공격성과 기만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지나쳤다고 믿는다.


그러한 역사적 과정과 의미를 파악하기 전에도 나는 개인적으로 나의 신앙과 전도에 확신이 없었다. 초중고 시절에 나는 학교에서 아주 가까운 친구들에게만, 우정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교회에 와보라고 권했을 뿐이다. 그러나 결과는 성공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교회를 한두 차례 구경만 하고 더 이상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전도에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또한 내가 전도에는 소질이나 재능이 없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게 되었다.


6.


나에게 다소 성공적인 전도에 관한 미담이 하나 있기는 하다.

6학년 때 내가 앵무새처럼 '사영리'를 읊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아마도 내 말을 듣고 대방교회에 왔던 아이가 한 명 있다. 그 아이는 한 지붕 세 가족으로 변했던 우리 집에서 대문 옆에 지어진 방에 살았던 여학생이었다.


그 애의 이름은 정자이고 성은 기억나지 않는다.


정자의 부모님은 모두 일하러 다녔다. 외동딸인 정자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공부하고 혼자서 지냈다. 친구들과 떠들기 좋아하고 활동적이었던 나에 비해 정자는 매우 조용하고 얌전한 성격이었다. 정자는 오후에 대체로 혼자 방 안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이따금 동네에 있는 다른 여자아이들과 조용히 담소를 나누거나 고무줄놀이를 하기도 했다.


정자는 나와 같은 6학년이었다. 같은 집안에 살았지만 나는 정자와 대화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우리는 어쩌다 마당에서 마주쳐도 어색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으로 지나쳐 갔다. 그 나이에 우리는 남녀 사이가 수줍어서 서로 말 붙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랬던 내가 정자에게 뭐라고 말하면서 교회에 가자고 했던 것일까.


기억나지 않지만, 정자는 별 거부감 없이 곧바로 대방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그렇게 말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교회에 관해 내가 먼저 말을 시작했지만, 실제로 교회에 다니기로 한 것은 어쩌면 정자 스스로 정한 것일지도 모른다. 정자가 교회에 왔지만, 내가 정자와 ‘같이’ 교회에 다닌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이 성가대 대원이었던 나는 일요일 아침에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교회에 가야 했다. 성가대는 예배 시작 전에 합창 연습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자는 교회로 혼자 와서 6학년 학생들이 모이는 장소로 갔을 것이다. 예배시간 내내 성가대 대원들은 성가대 석에 앉아 있었고, 성경공부까지 그 자리에서 했다. 그래서 내가 정자를 전도했다고 말했지만, 교회에서 내가 그 애를 만나거나 대화한 일은 거의 없었다.


내 기억에, 정자는 거의 말이 없었지만 온순하고 착한 성격의 아이였었다. 공부를 얼마나 잘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얼굴이 갸름해서 동양적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던 정자는 얼굴이 하얗고 차분했으며, 말도 천천히 했다. 나를 조금 알게 된 후부터 정자는 나를 볼 때마다 살짝 미소를 짓곤 했다. 그럴 때 양 볼에 보조개가 살짝 파였던 정자의 얼굴을 기억한다.


내가 정자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놀랐던 것은 그녀가 피아노를 쳤기 때문이다. 사실 어쩌면 그때 나는 정자가 치는 피아노 소리에 반했을지도 모른다. 정자네가 이사 온 후부터 우리 집 대문을 오갈 때 나는 이따금 피아노 소리를 듣게 되었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했는데 뜻밖에 정자네가 사는 방의 창문을 통해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곧 정자가 피아노를 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자의 부모님이 일하러 간 오후에도 피아노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그때부터 그 소리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때때로 정자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 나는 호기심을 갖고, 아예 대문 옆에 있는 정자의 방 창문 아래에서 한동안 가만히 서 있기도 했다. 물론 정자는 그런 사실을 몰랐을 테지만. 비록 서투른 솜씨이긴 했어도 맑은 피아노 연주 소리는 어린 나를 매혹시켰다.


거의 모두가 가난하게 살던 시기에 피아노를 가지고 있고 피아노를 친다는 것은 부러움을 살 수밖에 없었다. 내 주변 친구들 가운데 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했던 상숙도 피아노를 치지는 않는 듯했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상숙은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나에게 밝힌 적이 있다.)


정자네가 비록 우리 집 대문 옆방에서 월세를 살고 있었지만 그 방 안에 피아노가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경제적으로는 부유하지 않다 해도 아마도 일찍이 음악을 좋아한 나머지, 외동딸인 정자에게 피아노를 배우도록 했고, 나아가 단칸방에 살면서도 애써 피아노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이사할 때마다 그것을 가장 중요한 보물로 가지고 다녔을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내가 속한 세계와는 차이가 있었다. 그때 나는 그런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어느새 정자를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느 날 오후, 마당에서 우연히 정자와 마주쳤을 때 나는 한껏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다.


“가끔 네가 피아노 치는 소리를 들었어. 너 정말 피아노를 잘 치는구나. 부럽다.”


내가 느닷없이 이렇게 말을 걸자, 정자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면서 매우 부끄러워했다. 우리는 한 집에 살고 있었지만, 지나가다가 마주치면 서로 어색하게 얼굴만 잠시 보았을 뿐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즉시 붉어진 얼굴로, 그러나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아, 아니야. 겨우 조금 배웠는걸.”


나는 혹시라도 그녀가 내 말을 무시하고 지나갈까 봐 걱정했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부끄러워 하기는 했지만, 정자는 내 얼굴을 똑바로 보고 대답했다. 가까이서 보니까 그녀의 까만 눈동자가 맑게 빛났다. 나는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한 채 수줍은 어투로 이렇게 말을 이었다.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구나. 학원이 어디 있는데?”

“이사 오기 전에 좀 배웠어. 그런데 여기로 이사 온 후에는 학원에 안 가.”

“그렇구나. 네가 피아노 치는 거 보고 싶다. 피아노가 어떻게 생겼나 보고 싶기도 하고.”

“잘 못 치는데…”


그 짧은 대화 후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잠시 망설이던 정자는 피아노를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나에게 자기 집으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내가 정자가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렇게 즉각적으로 자기 집으로 들어오라고 말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거기서 '지금은 아니야',라고 말할 이유도 없었다.


정자는 별 거리낌 없이 나에 앞서 집으로 먼저 들어갔고, 나는 정말로 그래도 되나, 하면서 정자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부엌문을 열고 들어가서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나의 가슴은 갑자기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여학생과 단 둘이서 방 안에 있게 된 것이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정자의 부모님은 안 계셨다. 그분들은 아침 일찍 일하러 가셨다가 저녁에야 돌아오셨다. 정자가 이사 온 후 나는 그 방 안을 처음 보았다. 부모님과 정자, 세 명이 하나의 방에서 사는데도 방 안은 깨끗했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정자는 별 말도 없이 곧바로 창문 아래에 있는 검은색 피아노 앞으로 가더니 의자를 끌어내어 앉았다. 그러더니 익숙한 자세로 악보를 펴고 숨을 한 번 깊게 쉬고 나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정자가 나에게 피아노를 칠 테니 들어보라고 하거나 방에 앉거나 서 있으라고 말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어정쩡하게 정자 뒤에 서 있었다. 성가대에서 악보를 보면서 노래를 하기는 했지만 정자가 치는 악보는 매우 달라 보였다. 악보가 어려워서 그렇다기보다 긴장해서 그런 탓인지, 악보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약간 긴장한 채 정자가 무슨 곡을 치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그저 피아노 소리만 듣고 있었다. 방 안이라 그런지 피아노 소리가 크게 울리는 듯했다.


이른 오후라 피아노 위에 있는 창문으로부터 밝은 빛이 들어왔다. 그 앞에서 내가 잠시 멈춰 서서 정자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곤 하던 그 창문이었다. 나는 하늘로부터 무수한 빛줄기가 창문을 통해 들어와서, 정자의 머리와 피아노 건반 위에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묘한 감흥에 젖어들면서 나는 정자의 등 뒤에 가만히 서서 피아노를 치는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언제나 양 갈래로 검은 머리를 곱게 딴 정자의 뒤통수가 내 눈에 자세히 보였다. 갈색 스웨터를 입은 정자의 좁은 어깨도. 그녀의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풍겨오는 듯했다. 나는 어느새 마치 꿈을 꾸는 듯 몽롱한 기분에 잠겨 들었다. 피아노 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피아노 건반 위에서 정자의 작고 하얀 손가락들이 바쁘게 움직였고, 그것을 바라보는 내 심장은 두근거리면서 약간 간질거리는 듯도 했다.


정자는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나 들으라는 듯 웃으면서 뭐라고 말했다. 아마 건반을 잘못 눌러서 음이 자꾸 틀린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뭐라고 말하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가 틀린 음을 친다 해도 나는 긴장해서 알아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음이 틀렸다는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 나를 불러놓고 나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했다는 사실이다. 정작 중요했던 것은, 그렇게 남에게 내보이기에는 어색하고 어려운 자신의 중대한 삶의 내면을 나에게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 나를 위해서 나 하나만을 놓고 연주하는 모습을 보았던 나의 첫 경험이었다. 내 머릿속에 그것은 카메라로 찍은 하나의 장면과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도 그 장면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고, 그런 추억을 안겨준 정자에게 애정은 아닐지언정 깊은 호의를 가지고 있다.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훗날 나는 그것이 어린 소녀에게 매우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행동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아직 여리고 부드럽고 수줍음이 많은 나이에, 자기와 같은 나이의 소년을 불러서 기꺼이 자기 뒤에 세워두고 그를 위해 피아노를 치다니! 나는 그런 정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그것은 그저 내가 집주인의 아들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감정을 알듯 모를 듯했다.


이럴 때 피아노를 잘 치는가 못 치는가는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를 불러놓고 그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해 본 사람은 그런 마음의 깊이와 용기의 크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속으로 혹시 정자가 나를 좋아하나,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정자와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에 관해서도 상상했다.



7.


"정자야, 우리 교회에 나올래?"


내 말을 듣고 불현듯 정자가 대방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지 겨우 한두 달이 지났을 때였다. 나는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정자가 이번에는 어린이 성가대에 들어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서울시 어린이 성가대 경연대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이었을 것이다.


"정자야, 어린이 성가대에 들어올래? 성가대 경연대회가 곧 열리는데 이 기회에 너도 들어와서 같이 하자."

"어린이 성가대에?"

"그래. 너는 피아노도 칠 줄 아니까 악보도 잘 볼 테고 어려운 게 없을 거야. 성가대 아이들도 모두 착해."


정자는 내 제의에 호의적 반응을 보였고, 곧 어린이 성가대에 들어왔다. 내 생각에는 이상한 일이었지만, 정자가 성가대에 들어올 때는 아이들 앞에서 독창을 시키지 않았다. 나는 성가대에 처음 갔던 날을 잊을 수 없었는데, 그때 들어오는 아이들은 독창을 하지 않았다.


마침 어린이 성가대 경연대회가 다가오는 시점이라, 강영근 지휘자는 가능하면 6학년 학생들을 성가대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그 바람에 그해 봄에 정자 외에도 다른 6학년 여학생 두세 명도 함께 성가대로 들어왔다.


그런데 신기하게 정자 외에 그 여학생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겨우 수개월 동안 성가대에 들어왔던 아이들 말이다. 이미 성가대 터줏대감과 같았던 상숙이나 지향처럼, 어린이 성가대뿐 아니라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도 친했던 여학생은 지금도 잘 기억하지만, 다른 여학생들은 결국 가까운 친구로 남지 못했다. 그들 중 일부는 중학생이 되면서 교회를 떠났고 또 일부는 교회에 남았지만 점차 잊혔다. 그때도 혹시 그들이 교회에 계속 남았다면 친했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들은 내 기억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하여간 정자는 그해 여름에 무사히 성가대에 안착했고 어린이 성가경연대회에도 참가했다. 그러나 그해 겨울에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정자를 얼마나 좋게 생각했는지도.


그녀가 나를 위해 피아노를 쳤던 일은 겨우 한 번으로 그쳤고,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본 적은 없다.


사실 그해에 나는 은희에게 마음이 온통 쏠려 있었으므로, 어쩌면 그런 마음이 성가대에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 노출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정자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에 관한 고민은, 설사 있었다 해도 오래가지 않았을 것이다.



8.


확실한 것은 그해 겨울에 또는 그전에 정자는 떠났다. 아니다. 모르겠다. 하여간 우리 집 대문가에 있었던 그 아이의 집은 이사 나갔다. 이듬해 봄에, 그러니까 내가 빡빡머리 중학생이 되었을 때 정자를 본 기억이 없다. 정자가 우리 집에서 몇 개월이나 살았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도 그 아이가 떠났을 때도, 그 아이는 6학년이었다. 그러니 그해 봄부터 겨울 언저리까지 일 년도 안 되는, 또는 길어봤자 일 년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정자가 중학생이 된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그녀가 중학생이 되어 검은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그녀가 교복을 입었다면 더욱 예쁘게 보였을까.


정자는 우리 집에서 이사 나간 후, 당연한 말이지만, 대방교회에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필경 대방동을 떠나 멀리 갔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대방동을 떠난 여학생이 멀리서 일부러 버스를 타고 대방교회로 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와 정말로 친했던 친구들이라도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까.


하여간 그 후 나는 한 번도 정자를 보지 못했다.

안타깝지만, 그녀는 내 삶에서 그렇게 조용히 사라졌다.


나는 그렇게 수줍은 모습으로 나를 위해 피아노를 쳤던 정자의 모습을 아련하게 기억한다. 피아노 건반 위에서 부지런히 움직였던 작고 하얀 예쁜 손가락들, 단정하게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따서 정수리 가르마가 더욱 밝게 보였던 검은 머리 모양, 말은 별로 없지만 도도하거나 도전적이지 않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태도, 금세 수줍어하면서도 순박하고 환하게 웃는 얼굴, 조금만 당황하면 곧잘 붉어지던 하얀 얼굴, 그리고 당시 또래 여자애들과 달리 제법 성숙하게 봉긋했던 가슴.


그래서 우리 집에 세 들어 살았던 여러 사람들 가운데 지금까지 내가 가장 잘 기억하는 사람이 바로 정자다. 나를 따라서 대방교회로 왔었고, 나를 위해 아주 잠시 소박하게나마 피아노를 연주했던 정자다.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잘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자는 나에게 짧지만 꽤 강력한 인상을 남긴 사람이다.


정자는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고 있을지.

곧잘 수줍어하던 그때의 정자가 보고 싶다.



<추신>


전도라고 하기에는 딱 맞는 말이 아닌 듯하지만, 내가 실제로 절실하게 대방교회로 오라고 했던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나는 그 친구가 대방교회에 오기를 간절히 바랐고, 그 일이 이뤄지도록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신아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같은 학급에 있었던 어여쁜 신아.


나의 정성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녀의 마음에 가 닿았는지, 놀랍게도, 그 친구는 결국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대방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상숙이 신아와 매우 친한 친구였다. 교회에 이미 친한 친구가 있었으므로 신아는 쉽게 '우리 친구들 모임'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니 어쩌면 전도는 내가 아니라 상숙이 했을 수도 있다.


그가 교회로 나오게 된 계기 또는 배경에 나의 노력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신아에게 그런 배경에 관해 묻지 않았고, 그녀는 거기에 관해 말한 적이 없다. 나는 신아에 관해서 또 교회친구들에 관해서 나중에 더 길게 말할 계획이다. 신아는 정자보다 훨씬 오랫동안 대방교회를 다녔고, 어린 시절에 나에게 훨씬 더 큰 의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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