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거나 타거나 2> 연재를 마치며

에필로그

by memory 최호인


겨우겨우 쓰긴 했지만, 이제 와서 보면 그 오래된 기억을 어떻게 길어 올려 썼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여기 적힌 모든 글은 내 경험을 '토대로' 썼다. '토대로 썼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적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있었던 사실을 기초로 하지만 약간이나마 각색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기억을 아무리 짜낸다 해도, 있었던 일을 그대로 기록할 수는 없다.


이 책은 내가 기획하고 있는 <걷거나 타거나> 시리즈 중 두 번째 권이다. 1권은 이미 브런치매거진 형식으로 발표했고, 이제 연재 형식 브런치북으로 <걷거나 타거나 2>를 마치게 되었다. 꽤 긴 여정이었는데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다행으로 생각한다.


이 두 권은 모두 주로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바탕으로 적은 기록이다. 1권은 내가 대방동에서 자라고 동네 골목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던 시절과 시골 방문 경험에 관한 이야기다.


2권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기획했다. 1부는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들이다. 대체로 선생님과 학교와 친구들에 관한 나의 경험과 소감들이다. 불행하게도 거기에는 밝음보다 어두운 측면이 많다. 나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이 그랬다는 것일 뿐 학교와 선생님에 관해 너무 부정적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책의 2부는 대방교회, 특히 어린이 성가대를 중심으로 교회와 개인적 신앙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엮었다. 아니, 신앙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만한 내용은 없다. 주로 어린이 성가대에서의 즐거운 경험, 그리고 교회 친구들과의 우정에 관한 추억들이다.


기억의 쪼가리들을 모아서 모아서 쓰다 보니 때로는 의미 있는 이야기로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부분적으로는 상상과 허구를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나의 추억과 경험을 있는 그대로 옮겨 전하는 것은 별로 의미 없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나는 문학적 재미와 의미를 살리고자 노력했다. 또한 이 이야기들의 배경이 되는 당대 사회 환경과 학교와 교회, 그리고 거기에 적응하면서 성장하는 한 어린이의 감정과 심리를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것을 의도했다.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이야기는 없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나는 다만 나의 과거를 애써 더듬어, 나 또는 당대의 인간을 하나의 이미지로 재구성하는 데 글을 쓰는 의미를 두었다.


이렇게 써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또렷이 기억하지만 미처 기록하지 못하고 빠진 것들, 대충 초고만 기록해 둔 채 어느 에피소드에도 속하지 못한 쪼가리들, 기억이 너무 어렴풋해서 미처 표현하지 못한 부분들, 내 기억이라고 믿지만 잘못 묘사하거나 잘못 표현한 것들, 아무리 애를 써도 잘 떠오르지 않는 기억 뭉치들, 또는 사라진 기억 쪼가리들에 관해 그렇다.




브런치스토리의 성격상, 또 핸드폰으로 글을 읽는 사람에게, 이렇게 에피소드들을 길게 쓰는 것은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말을 듣기도 했다. 요즘은 핸드폰으로 글을 읽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그렇게 길게 써서 누가 내 글을 읽겠냐는 말.


처음에는 그런 문제를 신경 쓰지 않았지만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리면서 글 길이에 관해 깊이 생각했다. 그런데도 줄이기가 쉽지 않았다.


글재주가 부족해서 길어지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기승전결을 갖춘 에피소드들을 쓰려고 노력한 결과다. 많아야 서른 개의 글 뭉치로 제한된 '브런치북'의 성격 또한 각 에피소드를 길게 기록하게 했다는 변명도 덧붙인다. 서른 번 이하의 횟수로 한 권의 책을 꾸겨 넣으려고 하니 각 글은 특히 핸드폰으로 읽기에는 너무 길어졌다.


<걷거나 타거나> 1권과 2권은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원고지 분량으로 각각 900매 정도에 해당한다. 이것은 나의 어린 시절의 단락들을 구분 지으면서 글을 썼고, 각각 책 한 권의 분량을 의식한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정말로 책을 발간하겠다는 계획이나 의지는 아직 없다.)


내가 들었던 또 다른 지적은, 글의 독자가 누구인지 의식하고 쓰냐는 비판이다.


글을 쓸 때 언제나 독자가 누구인지 예상하고 써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애초에 나는 독자를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나를 위해서 내 인생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2020년 벽두부터 광폭하게 퍼져나갔던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세계적으로 팬데믹이 확산되었던 그때, 특히 초기에 그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뉴욕에 살면서 나는 실제로 아파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 과정에서 나는 조속히 내 생애를 글로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걷거나 타거나> 시리즈다.


하여간 글이 길어져서 지루해지거나 애초에 주된 독자층을 의식하지 않고 글을 쓰게 된 것은 나의 문학적 재능이 모자란 탓이라고 고백한다. 나는 나를 탓할 뿐이다.




팬데믹이 발생한 후에 미 연방정부는 전 국민에게 '봉쇄' 명령을 내렸었다. 두 달 내내 집 안에만 있을 수밖에 없었던 나는 <걷거나 타거나>에 앞서 어린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장편소설을 가장 먼저 썼다. 지금 그 글을 읽으면 모자란 것이 많아서 대폭적으로 수정해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쓰고 나서 장편을 쓰는 데 약간 자신감이 붙기는 했다. 그 후에 나는 본격적으로 <걷거나 타거나> 시리즈를 기획했고 개인적 추억담 위에 문학적 개연성과 재미를 붙이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 기억과 경험의 사실성과 진실성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재미를 위해서 마구 허구적인 이야기로 꾸며내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다. 또한,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소설적 대화들을 동원해서 묘사하기는 쉽지 않았으므로 주로 당시의 상황이나 감정을 묘사하거나 설명하는 내용이 많았다. 허구적인 대화를 많이 섞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다.


애초부터 이렇게 긴 글을 예상하지 않았지만, 고심하면서 쓰다 보니 자꾸 기억이 모여들고 구체화된다. 미숙한 글이지만 부디 독자들이 추억과 재미와 예술성을 찾기를 기대한다. 또한 부차적으로는 당대의 사회적 환경과 분위기도 함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걷거나 타거나> 3권은 주로 중고등학생 시절의 경험에 관한 이야기를 적을 계획이다. 독자들의 관심과 애정 어린 평가를 기대한다. 다시 한번 지금까지 성원을 보내준 친구들과 독자들에게 감사한다. (끝)



<추후 연재되는 글에 관하여>


이미 초고 형식으로 대략 써두었던 <걷거나 타거나> 3권은 일단 대규모로 수정 보완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그래서 그 책에 앞서 다른 여행기를 먼저 연재하기로 했다. 2024년 10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친구들과 함께 여행했던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가제는 <2024년 가을 여행>. 이 기록은 한 주에 화, 목, 토 세 번 올릴 계획이다. 미숙한 글이지만 독자들의 격려와 성원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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