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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의 뒷이야기 1

2024년 가을 여행 이야기

by memory 최호인

1.


단양과 충주, 영주와 봉화, 황지와 사북, 묵호와 강릉 등 충북과 경북과 강원도를 아우르는 사흘간의 여행이 끝난 후 거의 두 주만에 향숙과 재관과 상국을 만났다.


상국이 이태원에 있는 미술관에서 만나자고 하길래 그러자고 했는데, 나는 먼저 이태원 참사를 떠올렸다. 마침 시월 말이라 10.29 참사 2주기가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 현장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상국과 재관을 만나기에 앞서 그 사고 현장을 먼저 가보기로 했다. 강남역에서 이태원역까지는 지하철로 30분 정도 거리다.


얼마만인가, 이태원에 가는 것은.

수십 년 전 언제 갔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비록 내가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랐지만 이태원은 나에게 인연이 별로 없었던 곳이다. 그저 미군 기지가 있고 외국인들이 많은 이색적인 곳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곳에 가야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특별한 용품을 구할 수 있다는 말만 들었던 곳이다. 그런 재미로 과거 언젠가 수차례 갔었을까.


이태원 경리단길은 아마도 십 년 전부터 유명세를 탔다. 좁은 거리에 이색적이고 독특한 풍미를 느끼게 하는 카페와 음식점과 클럽 등이 집중되면서 관광객과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이 지역의 상권이 크게 번성하게 되자, 건물주들은 때를 만났다는 듯 임대료를 과도하게 올렸다. 그로 인해 지역 상권을 발전시켰던 사람들은 그 거리를 빠져나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 거리는 다시 낙후되기 시작한다.


소위 젠트리피케이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애를 쓰지만 도대체 거기에 ‘적당한 윤리’라는 것은 어떻게 창조되고 유지될 수 있을까. 언뜻 생각하면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 모두 ‘공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기업과 상업의 번영과 쇠퇴는 분산된 개인들의 욕망과 노력을 뛰어넘어 독자적인 길을 걷는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운 좋게 돈을 크게 벌고 누군가는 돈을 날린다. 기업주가 됐든 건물주가 됐든, 눈치 빠른 누군가는 재빨리 돈을 벌어 뛰어나가고 남은 사람들은 이런저런 고생만 하다가 결국 허물어지고 만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누구든지 눈치껏 돈을 벌고 잽싸게 튀어야 한다는 ‘한탕주의’가 횡행하게 되지 않을까.


이태원로.

10.29 기억의 도로.


직접 가서 보니,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골목은 매우 좁고 짧다. 그 골목 입구에 서서 가만히 보기만 해도 가슴이 떨리고 목이 멘다. 나는 천천히 그 골목을 지나 세계음식거리로 올라갔다. 완만한 오르막 경사가 있는 골목이다. 세계음식거리에서 뒤로 돌아서 다시 골목을 내려다보았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세계음식거리를 잇는 길이 40미터, 폭 3.2미터의 골목.

이렇게 좁고 짧은 길인데…


아수라장이었을 그때의 광경이 상상되어서 나는 차마 그 골목을 오래 바라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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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거기서 대로를 건너 조금만 걸어가면 한국 이슬람 사원 서울중앙성원이 있다. 작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을 지났을 때 갑자기 높은 사원 입구가 보였다. 그 내부로 약간 오르막길이 있었고, 그 뒤에는 이슬람 사원 특유의 건축양식이라 할 웅장하고 멋있는 건물이 보였다.


이슬람교는 신라시대에 처음 들어오기는 했으나 그것은 옛날이야기이고, 현대에는 한국전쟁 시기에 튀르키예 군인들이 들어오면서 전파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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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슬람교 중앙회에 따르면 한국의 무슬림 인구는 15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중 12만 명은 우즈베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 외국에서 이주한 노동자들이고, 나머지 3만 명도 주로 주한 외국인 학생들과 사업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기독교계 신문인 ‘뉴스 앤 조이’가 2024년 10월 13일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한국의 무슬림 인구는 31만 명으로 추산되었다. 심지어 40만 명이 넘는다는 말도 나온다.


나아가 향후 무슬림 국가들로부터 이주 노동자들이 늘어날 전망이므로 한국의 무슬림 인구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신문은 2050년쯤이면 한국 내 이슬람 인구가 300만~400만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는데, 그것은 기독교계에서 과장하여 전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기독교계는 한국에서 무슬림들이 증가하여 혹시라도 종교갈등이 더욱 불거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는 다행히 종교갈등이 비교적 매우 적은 한국사회에서 그런 우려가 앞으로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미리 과장할 필요는 없다. 각 종교가 진정으로 평화를 사랑하고 타인을 존중할 수 있다면 심각한 갈등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지나치게 원리주의적이고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광신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광신도들은 종종 이성을 잃고 신의 이름을 걸고 폭력과 방화와 전쟁까지 불사한다. 한국에서는 부디 그런 갈등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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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반드시 표현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흔히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가 그 사회에서 지배적이어야 한다는 특권의식을 가지기 쉽지만 바로 그것이 착각이고 함정이다. 지금처럼 사회가 급속히 변동되는 시기에 우리는, 새롭게 유입되거나 부흥하는 문화와 종교가 자신의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사회의 공정한 윤리와 법을 해치지 않는 한, 누구에게나 표현과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태원 마을을 그렇게 겉핥기식으로 돌아본 후 나는 페이스갤러리로 가서 상국, 재관, 향숙을 만났다. 리움 미술관에도 가보았다. 이 미술관에도 수십 년 만에 온 듯하다.


그렇게 미술관을 보고 나서 우리는 드디어 식당으로 갔다. 향숙은 나에게 먹고 싶은 음식이 뭐냐고 물었고 나는 샤부샤부가 좋다고 말했다. 다행히 향숙이 근처에 있는 샤부샤부 식당을 찾아냈다. 술을 마시지 않는 향숙이 있었으므로 우리는 모처럼 술을 마시지 않고 온전히 맛있게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기분 좋으니까 오늘은 내가 쏜다.


https://www.youtube.com/watch?v=suJSeBHjELc

Georges Bizet - L'Arlésienne Suite No. 2 (Minu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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