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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와 인간 2

걷거나 타거나 (27)

by memory 최호인

4.


다시 연못 사건으로 돌아가서 말하자면, 우리는 그날도 여느 때처럼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느라, 온몸이 땀에 젖었다 그러나 연못으로 가는 동안에 땀은 다 말랐을 것이다. 우리는 연못가에 도착한 후 신고식을 하듯이 즉시 납작한 돌멩이를 찾아서 물 위로 날렸다. 돌멩이들이 파문을 일으키면서 물 위로 날아다녔다.


연못가에는 이미 우리들처럼 자기 동네에서 놀기에 식상한 수십 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여느 때처럼 어떤 아이들은 신발을 벗고 연못으로 걸어 들어가서 공연히 물을 손으로 튀기면서 놀았으며, 물 밖으로 나와서는 거머리가 다리에 붙었다고 꽥꽥 소리를 지르면서 야단법석을 떨었다. 누군가 다리에 거머리가 붙었다고 외치면 아이들은 거머리가 붙은 모습이나 붉은 피가 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때 보았던 하얀 다리와 검은 거머리와 선홍색 피의 이미지가 지금까지 또렷하게 남아 있다. 불안한 얼굴로 시무룩해진 표정을 짓고 앉아 있는 아이의 다리에 붙은 거머리의 강인한 흡인력과 접착력에 나는 놀랐다.


그러던 중 나는 한 곳에서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빠르게 모여드는 것을 보았다. 무슨 진귀한 일이 생겼나 보다, 해서 나도 그들 곁으로 다가섰다. 거기에는 중학생인 듯 빡빡머리인 아이들이 여러 명 있었는데, 그들은 개구리를 잡아서 놀고 있었다. 그들을 둘러선 여러 아이들 어깨너머로 나는 그들이 한 손으로 개구리를 꽉 붙잡고 주사기를 꽂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주사기를 개구리 항문에 꽂고 공기를 주입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미 여러 번 해본 듯 킬킬거리면서 바둥거리는 개구리의 허리를 꽉 붙잡고 능숙하게 그 ‘짓’을 했다. 뾰족한 주삿바늘이 없는 주사기를 개구리 항문에 꽂아서 공기를 밀어 넣자 개구리의 배가 풍선처럼 빠르게 부풀어 올랐다. 나는 순간적으로 기계로 바람을 넣어서 급속히 부풀어 오르는 풍선을 떠올렸다.


그렇게 배가 부풀어올라도, 신기하게 개구리의 배는 풍선처럼 터지지는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그 빡빡머리들이 개구리 뱃속에 공기를 얼마큼 넣어야 하는지 이미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 또는 개구리의 배 근육이 풍선에 비해 훨씬 강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아무튼 빡빡머리의 손아귀에 잡혀서 배가 잔뜩 부풀어 오른 개구리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허공에 사지를 바둥거리기만 했다. 개구리 배가 작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을 때, 빡빡이들은 드디어 다 됐다는 듯 둘러싼 아이들을 헤치고 연못가로 나갔다. 항문에서 주사기를 뺀 후에도 부풀어 오른 개구리 배는 풍선과 달리 신기하게 그대로 유지됐다. 그들은 수류탄을 던지듯이 연못 가운데를 향해 개구리를 던졌다. 개구리는 십 미터 정도 날아가서 물 위에 떨어졌다.


부력.


학교 생물 시간에 배운 부력이 생각났다. 부력이란, 물체가 유체에 잠겨 있을 때 중력이 반대 방향으로 물체를 밀어 올리는 힘을 말한다. 그것은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이기도 하고, 배가 물 위에 뜨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부력이 작용하고 있고, 그 원리에 따라 개구리는 물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부푼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물 위에서 바둥거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러 빡빡이들이 그런 괴상한 ‘짓’을 했으므로, 조금 후에는 여러 마리의 개구리들이 물 위에서 허우적거렸다. 빡빡이들은 킬킬거리면서 희열에 찬 얼굴로 그 광경을 보았고, 남들에 비해 용감하고 우월한 일을 했다는 표정이었다. 깊은 놀라움 속에 나는 그 광경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것은 끔찍한 충격이었다.

저들은 도대체 왜 저렇게 잔인한 짓을 할까.


물 위에서 허우적대는 개구리들로부터 파문이 일면서 넓게 퍼져 나갔다. 물 위의 개구리들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한 나는 생각했다. 개구리의 해부학적 구조를 알지 못하지만, 설사 바늘이 없는 주사기를 사용했다 해도 그런 행위는 개구리의 생식기관이나 배설 기관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것이다. 설사 운 좋게 상처를 입히지 않더라도 물 위에 떠있는 개구리의 목숨은 분명히 위태로울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떤 빡빡이가 이렇게 말했다.


“야, 이렇게 한다고 해서 개구리가 죽지는 않아. 이 녀석들이 방귀를 뽕뽕 뀌어서 조금 있으면 배에서 바람이 다 빠진단 말이야. 그러면 얘들이 저절로 물속으로 들어갈 거거든. 그래서 죽지 않고 다 살아나는 거야.”


그러나 다른 빡빡이가 반박하는 소리도 들렸다.

“웃기고 있네. 쟤들이 어떻게 살아나냐? 바람 빠져서 물속에 들어가기 전에 물뱀이나 새들이 와서 쟤들을 다 잡아먹을 거다.”


또 다른 빡빡이는 이렇게 말했다.

“아냐. 바람이 빠지기 전에 쟤들은 저기서 말라죽을 거야. 햇빛이 얼마나 뜨거운데. 쟤들은 피부가 마르면 숨을 못 쉬어서 금세 죽어.”


맞다.

햇빛이 얼마나 뜨거운데.

정말 햇빛이 쨍쨍한 날이었다. 새파란 하늘에 작은 솜털 같은 하얀 구름 조각들이 떠있었지만, 연못 위에는 그늘 하나 없었다. 검푸른 연못 위로 투명한 햇빛이 소리도 없이 쏟아져서 눈부시게 반사되고 있었다. 물에 들어간 아이들이 바지를 걷어 올린 채 소리를 지르면서 첨벙첨벙 돌아다녀서 연못의 적막을 깼고 거울처럼 평평한 물 위에는 둥그런 물결만 퍼져 나갔다.


나는 빡빡이들이 했던 말 중에 어떤 것이 맞는지 알지 못했다. 물 위에서 허우적거리는 개구리들이 조만간 죽을지 아니면 배에서 공기가 빠져나가고 다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지 말이다.


나는 다만 엉뚱하게도 이런 상상이 떠올랐다. 만약 인간에게도 항문에다 주사기를 꽂고 저렇게 공기를 밀어 넣으면 개구리처럼 배가 터질 듯이 부풀 떠오를까.


만약 어떤 거인이 있어서, 인간의 허리를 손에 꽉 움켜쥔 채 바늘 없는 주사기를 가지고 인간의 배를 그렇게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게 한 후에 물 위에다 던지면, 인간도 개구리처럼 물 위에서 배를 하늘로 향한 채 허우적거릴까. 그러다가 혹시 트림을 많이 하거나 방귀를 많이 뀌어서 배에 있는 공기가 모두 빠져나가게 될까.


그렇게 풍선 바람 빠지듯이 배가 꺼지면 인간은 살아날 수 있을까. 아니면, 물속에서 물뱀이 다가와서 손이나 귀를 물거나 새가 날아와서 뾰족한 부리로 인간의 코나 눈을 쪼면서 괴롭히기라도 할까. 그것도 아니면, 강렬한 햇빛이 인간의 몸을 뜨겁게 달구고, 결국 인간은 고통스럽게 물 위에서 말라서 죽게 될까.



5.


먼 훗날, 배가 잔뜩 부른 산모의 모습을 보았을 때 문득 연못의 개구리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인간의 배도 바람을 잔뜩 불어넣으면 개구리처럼 부풀 어오를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를 낳을 때쯤 되면 산모의 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하게 부풀어서 나는 인간의 배가 저렇게 탄력성이 있었나 놀라곤 했다. 그러나 인간은 개구리처럼 물과 친하지 않아서, 배부른 개구리처럼 물 위에서 바둥거리면서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인간의 배가 그렇게 부풀어 오르면 정말로 저절로 방귀를 많이 뀌거나 트림을 많이 하게 될 것인지 궁금했다. 그렇게 방귀나 트림을 통해 부푼 배가 다시 원상 복귀할 수 있을 것인지도. 정말 그렇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개구리도 인간도 모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상으로 되돌아가고, 우리의 그 지루한 여름 오후는 그저 재미있고 떠들썩한 소동이 한바탕 벌어졌던 것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개구리 항문으로 공기를 주입한 빡빡머리 아이들도 사실은 그리 잔인한 아이들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어쩌면 배부른 개구리들의 배가 금세 꺼지는 것을 이미 알면서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물에 떠서 허우적거리는 배부른 개구리들을 향해 돌을 던지던 아이들도 사실은 정말로 개구리를 맞히려고 던진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작은 연못을 둘러싸고 인간과 개구리가 지루하고 무더운 여름 오후 한때 유쾌하고 흥미진진하게 어울려 놀기만 했을 뿐, 연못의 모든 것은 다시 평화롭고 조용한 일상으로 되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껑충껑충 뛰어다니다가 마당에 있는 밥통을 뒤엎은 후 혼이 났던 강아지가 꼬리를 내리고 도망갔다가 조금 후에 다시 꼬리를 흔들면서 나오는 것처럼, 그 모든 소동은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 금세 잊힐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연못에서 서둘러 돌아 나오는 길에 나는 애써 그렇게도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연못의 개구리들은 모두 무사했을 것이라고.


6.


그 후로도 나는 가끔 개구리들이 물 위에 떠 있는 광경을 떠올렸다. 그리고 또 나에게 자문했다.

개구리들은 그날 언제까지 그렇게 있었을까.

혹시 주사기로 넣은 공기가 개구리 뱃속으로 들어가기만 하지, 영영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배부른 개구리들은 그날 오후에 과연 살아남았을까 아니면 죽었을까.

만약 살았다면, 배가 부른 채 연못 위에 누워서 여름밤의 밝은 달을 바라보았을까.

그렇게 배가 불러 있을 때도 배가 고프다고 생각하고 모기를 잡아먹고 싶었을까.

만약 뜨거운 햇빛에 말라죽었다면, 죽기 전에 부풀어 올랐던 개구리 배는 푹 꺼지기는 했을까.

아니면, 영원히 배가 부른 채 죽었을까.


나는 일생에 걸쳐 그 끝도 없을 듯한 질문들에 관해 두고두고 생각해 보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문제도 정답을 찾지 못했다. 또한 아무에게도 거기에 관해 묻지 않았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질문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 징그럽고 잔인해서 상상하기도 싫고, 상상만 해도 항문이 간지럽거나 배가 아픈 듯 느낄 것 같았다.


그날, 뒤늦게 표현하기 힘든 충격과 슬픔에 젖은 나는 개구리들이 물 위에 둥둥 떠서 허우적대는 광경을 오랫동안 지켜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개구리들의 잔뜩 부른 배가 꺼졌는지, 아니면 물뱀에게 잡아먹혔는지, 그도 아니면 강한 햇빛에 말라죽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 무덥고 맑았던 날, 투명한 햇빛이 잔잔한 물 위로 눈부시게 반사되었던 날, 연못을 떠나면서 나는 여전히 물 위에 떠 있는 개구리들을 눈에 힘겹게 담기만 했다. 배가 부풀어 오른 개구리들은 이따금 사지를 움직여서 물 위에 작은 파동을 일으켰고, 그 파동은 연못 위에 작은 원을 그리면서 둥그렇게 퍼져나가다 이내 사라졌다. 하필 바람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


바둥거리다 지쳤는지, 아니면 이미 지쳐서 죽어가느라고 그랬는지, 개구리들은 처음에만 자주 다리을 허우적거렸을 뿐 내가 연못을 떠날 때쯤에는 움직임이 거의 없이 떠 있기만 했다. 그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연못의 풍경이다. 나는 그 후로 다시는 그 연못에 가지 않았다.


개구리들도 혹시 약간의 지능이 있어서 그렇게 바둥거려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지 모른다. 결국 개구리들의 생사 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다만 빡빡머리 아이들이 보여준 인간의 원초적 잔인함과 폭력성만 오래도록 기억했을 뿐이다.


그러나 어떤 아이들은 그 연못가에서 개구리를 잡아서 뜨거운 불에 구워 먹었고, 그런 것은 당시에 어디에서나 흔하게 있었던 일이므로, 그런 것을 두고 인간의 원초적 잔인성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 것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물 위에 떠있는 개구리에 대한 연민에 찼던 나조차, 실은 아무 거리낌 없이, 먹고 사느라고 바쁘게 움직이는 개미들을 일부러 눌러 죽이거나 밟아 죽이거나 태워서 죽였고, 조용히 피어난 꽃들을 이유 없이 밟거나 따기도 했으며, 비 내리고 난 후 아스팔트 위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들을 반토막 내거나 나무 꼬챙이로 찔러 죽이기도 하지 않았던가.


인간은 본능적으로 우물가로 기어가는 아이를 구하려는 심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반대로 멀쩡한 인간을 우물 속에 기어이 빠뜨려 죽이려는 속성도 가지고 있다. 어쩌면 평범한 사람의 가슴속 어딘가에는 늘 선함과 악함이 함께 도사리고 있어서, 우연히라도 때가 되면 숨어있던 본성이 느닷없이 발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른이 될 때까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 착하고 선량한 마음과 악하고 잔인한 마음 사이에 있는 본성의 바다에서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정처 없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본래 거칠 수밖에 없는 오랜 긴장과 고통이라도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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