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문경-예천-영주-안동 여행 (9)
1.
여행 첫날인 어제는 조금 바쁜 일정을 보냈지만 오늘은 한결 여유가 있는 날이다. 드넓은 용마루공원에서 나온 우리는 느긋해진 마음으로 안동에 있는 무섬마을로 향했다.
무섬마을은 워낙에 아름답고 평화롭게 보여서 유명한 곳이다. 나는 인터넷에서 이미 이 마을을 수차례나 보았다. 화면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예뻐서 나는 이 마을을 꼭 가보고 싶었다.
이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갈색 바탕에 하얀색으로 멋진 글씨가 적힌 안내판이 있다.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다.
“360년을 이어온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병자호란 후 충절의 선비저인으로 무섬마을이 개척되면서 세워진 외나무다리는 360년의 역사와 애환이 서려 있는 무섬마을의 상징이다. 양보하지 않으면 건널 수 없는 다리로 상생협력의 마음이 고요한 물 위를 가로지르며 발 끝을 타고 흐른다. 꽃가마 타고 시집 오는 새색시 이생을 떠나가는 상여의 잊히지 않는 숨결이 오롯이 피어오른다. 선조의 바른 정신이 살아 숨쉬는 외나무다리여! 흔들려도 스러지지 않고 좁아도 이어져 영원무궁하리라.
무섬마을 보존회 (초당 이무호 글씨)”
이 마을을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이런 풍경을 좋아하는 것일까.
2.
무섬마을이 주는 매력은 간단히 말하기 어렵다. 시원하게 보이는 넓고 깨끗한 하천 (내성천), 곱고 밝고 넓은 모래사장, 아담하고 고풍스러운 기와집과 정다운 초가집과 푸른 숲과 나무들이 적절하게 뒤섞인 시골마을, 희한하게 휘어진 지형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거기에 더해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무섬마을만이 가지고 있는 가장 독특한 특징은 하천 위로 아슬아슬하게 지나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휘어진 외나무다리다. 그 풍경이 주는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나는 적당히 표현할 방법을 찾을 수 없다.
‘무섬’은 물섬의 순우리말이다. 물에 뜬 섬처럼 보여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지난 350년간 이 특별한 마을은 좁은 외나무다리를 통해서만 외부로 연결되었다. 현재는 물론 현대식 수도교가 놓여 있어서, 외나무다리는 추억을 되살리는 관광 자원처럼 보였다. 지난 세월에 150미터 길이의 외나무다리는 홍수가 나면 떠내려가서 다시 만들어지곤 했다.
무섬마을의 역사는 17세기 중반부터 반남박씨와 선성김씨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기 시작한 데서 시작되었다. 마을을 휘감아도는 내성천의 물은 매우 맑아 보였다. 우리는 내성천 둑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걷기 시작했다. 넓고 깨끗한 모래사장과 하천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를 보자마자 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외나무다리가 주는 서정적 감정은 참으로 묘하다. 일반적인 교량이 결코 줄 수 없는 친근감과 시골의 감정을 안겨준다. 나는 이렇게 적당한 넓이로 펼쳐진 고즈넉한 풍경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내성천 둑은 제법 높았다. 홍수가 나면 물이 얼마나 불어나길래 이렇게 제방을 높이 쌓았을까. 둑 위에서 내려다보니까 모래사장이 넓어서 물가에 닿는 데도 한참 걸릴 듯했다. 관광객들이 외나무다리를 건너면서 아우성쳤다. 위태로워 보이지만 하천을 건너다가 떨어지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저절로 외나무다리로 접근했다. 막상 올라가서 보니까 외나무다리의 폭은 너무 좁아서 조금만 중심을 잃으면 떨어지기 십상이다. 외나무다리는 다행히 모래사장에서 시작해서 수십 미터나 이어진 후에야 물에 이르렀다. 그 말은 우리가 모래사장 위에 있는 외나무다리에서 미리 걷기 연습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모래사장에 있는 외나무다리에서 걷기 시작한 나는 물가에 이르렀을 때 약간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물이 깊지 않은 곳까지는 걷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을 보면서 걸으면 중심을 잃기 쉽다. 자칫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나는 물이 아니라 다리 위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천은 처음에는 깊지 않았지만 중심으로 갈수록 점점 깊어졌고 물살도 세졌다. 물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을 보니까 약간 어지러워지는 듯했다.
모험심이 강한 재관은 앞장서서 다리를 끝까지 건너갔다가 돌아왔다. 용감하고 경험을 존중하는 그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애초에 굳이 다리를 완전히 건널 생각을 하지 않았으므로 중간까지만 가서 사람들이 아슬아슬하게 다리를 건너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사람들이 허공에 손을 휘젓기도 하고 비명을 지르기도 하는 풍경을 보는 것만도 재미있었다.
외나무다리를 가다가 건너편에서 오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경우에 대비해서 마을 사람들은 외나무다리 중간중간에 짧은 곁다리를 붙여 두었다. 그래서 양보하는 마음을 가지고 곁다리로 가서 상대방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 해도 지난 세월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물에 빠졌을까 생각하니까 약간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추운 겨울에 또는 비바람이 심한 날에는 무서워서 어떻게 이 다리를 건너 다녔을까. 짐을 가지고 가야 할 때는 어떻게 다녔을까. 그런 상상을 하면, 이 다리를 낭만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
3.
외나무다리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에 우리는 무섬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예쁜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어우러진 풍경이었다. 도로는 담도 없는 집들 사이로 나 있었다. 그로 인해 관광객들은 어쩔 수 없이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볼 수밖에 없었다. 때때로 그들의 살림살이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야말로 시골 마을과 가정의 일상이었다. 너무 많은 관광객이 마을을 지나다니고 있었으므로 주민들의 사생활이 깨지고 피곤해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무섬마을을 들어가는 데는 입장료가 없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구경을 와도 입장료를 받지 않는 것은 무섬마을 주민의 넉넉한 인심을 증명하는 듯하다. 우리에게 시간이 넉넉하게 있었다면 마을 청년회가 여는 주막에 들어가서 부침개와 막걸리를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을 뒤편까지 가보니까거기에도 하천 위로 쭉 뻗은 외나무다리가 있었다. 그 다리 시작 지점에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엄마”라고 크게 외치고 있었는데, 다리 위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 아이의 엄마인 듯 보이는 여인이 걸어가고 있었다.
“엄마, 나 무서워서 못 가. 엄마, 돌아와. 나 못 간단 말이야.”
아이가 그렇게 크게 외치는데도 그 여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외나무다리 위에서 조심조심 걷고 있었다. 떨어지지 않고 건너편까지 다녀오기로 작정한 관광객의 모습이었다. 아이는 또 외쳤다. 자기도 데리고 가달라고. 무서워서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그러나 그 여인은 여전히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다리 위에서 계속 전진했다.
그 모습을 보니까 저절로 웃음이 나오면서 혼잣말을 했다. "자식, 용기를 내서 엄마를 따라가지.”
하지만 어린아이에게 외나무다리는 더욱 높고 무서워 보였을 것이다. 성인의 눈과 마음과는 다른 법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을 입구 쪽으로 다시 나오니 휘어진 외나무다리에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큰 소리로 웃고 가끔 비명을 지르면서 건너가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큰 즐거움과 낭만을 선사하는 곳이 무섬마을이다.
만약 나에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였는지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쉽게 대답할 수 있다. 무섬마을이라고. 내성천을 가로지르는 그 외나무다리는 내 생애 통틀어 보았던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다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