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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의 마력 1

걷거나 타거나 (5)

by memory 최호인

1.


어린 시절 내가 자랐던 우리 동네는 그리 큰 곳이 아니다.

우리 동네는 강남중학교 옆 완만한 경사를 오르는 도로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첫 번째 골목이다. 그곳에서 대방교회 바로 위에 있는 사거리까지 130미터 정도에 불과한 골목이다. 우리 집은 대방교회에서 강남중학교 쪽으로 네 번째 집이었다. 그 동네 중간에, 지금은 폐쇄됐지만 여의대방로로 나가는 아주 좁은 골목이 있었다. 그 좁은 골목으로 나가면 바로 대방시장 맞은편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갈 수 있었다. 두 개의 여관이 있었던 그 좁은 골목까지 우리 동네에 포함됐다.


그 작은 동네에 초등학생은 남녀 통틀어서 겨우 열 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중에서 가장 자주 모이는 아이들은 나를 포함해서 남자애들 대여섯 명이었다. 골목대장인 정수 형은 나보다 세 살 위였고, 훈이 형은 나보다 두 살 위였다. 나중에 내가 4학년이 되었을 때는 나보다 한 살 위였던 상윤이라는 아이도 이사 왔었다. 명이와 은상이와 완수는 나와 같은 학년에 있었다. 특히 나와 가까운 명이와 은상이는 우리 집에서 골목 건너편 집에 살고 있었다. 좁은 골목에 있는 태양여관 집 아들인 완수는 주로 우리와 어울렸지만, 때때로 대로 건너 다른 동네에 가서 놀 때도 있었다.


우리는 학교가 끝난 후에는 주로 동네 골목에서 놀았지만, 때때로 지루해지면 강남중학교나 성남고등학교 운동장으로 가기도 했다. 강남중학교는 우리 동네 바로 옆에 있었고, 성남고등학교는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이런 학교에는 주로 감시가 소흘해지는 방학 때만 들어갈 수 있었다. 강남중학교는 정문으로 들어갔지만, 성남고등학교는 학교 뒷산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 강남중학교와 서울공업고등학교 옆에 있는 길을 따라서 언덕을 10분 정도 올라가면 성남고등학교 뒷산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통로가 있었다. 그 뒷산은 무더운 여름에 햇빛을 피해서 자주 갔던 곳이다. 우리는 나무 아래 산길을 휘젓고 돌아다녔으므로 산의 지리를 잘 알고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 가면, 지금도 있겠지만, 철봉이나 쇠붙이 놀이 기구가 있었다. 우리는 철봉에서 턱걸이를 하거나 한쪽 다리를 걸고 두 팔로 매달려 빙글빙글 돌곤 했다. 철로 만들어진 기구에서는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치기’ 장난을 할 수 있었다. 술래를 정하고 술래가 도망가는 다른 사람을 터치하면 술래가 바뀌는 게임이다. 그것도 심심해지면, 때때로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서 체력 단련을 한답시고 줄지어 여러 바퀴를 뛰어 돌기도 했고, 재잘거리면서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함께 어울려 떠드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온종일 즐겁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놀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서야 집에 갈 때가 많았으니까.


학교 건물 입구는 거의 언제나 잠겨 있었다. 때때로 건물의 문이 열려 있다 해도 우리는 함부로 들어가지 않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해도 입구 근처 복도까지만 들어가서 건물 내부를 잠시 둘러보았을 뿐 금세 밖으로 나왔다. 학교의 텅 빈 교실과 복도는 괜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빛이 쨍쨍하고 무더운 날에도 학교 복도로 들어서기만 하면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때가 많아서 더 그랬을 것이다.


무서움 또는 공포에 대한 상상력은 어릴 때 한 번만 현실로 경험하면, 아주 오랫동안 잊히지 않고 우리의 머리에 길게 남아 있곤 했다. 그것은 심지어 두고두고 우리의 입을 통해 재탕 삼탕되면서 더욱 구체적이고 끔찍한 상상이자 경험으로 우리 마음에 굳어지기도 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무서운 사건이라면서도, 살다 보면 어디에서건, 우리는 자발적으로 남들에게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내뱉곤 한다.


여름방학의 어느 무더운 날, 우리는 강남중학교에서 놀다가 어느 건물 입구가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선 적이 있다. 한참 동안 뛰어노느라고 무척 더웠고 땀이 잔뜩 흘러서 우리는 잠시 시원한 곳에서 쉬고 싶었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데, 실내로 들어서자 갑자기 매우 시원하다 못해 등이 서늘한 느낌까지 들었다. 햇빛이 실내로 직접 닿지 않고 두터운 벽으로 가려진 건물 안은 으레 그런 법이었다. 조용하기만 한 건물 안에는 아무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군가에게 들킬 새라 키를 낮추고 까치발로 복도를 살살 걸으면서 창문을 통해 교실 안을 엿보기도 했다.


교실 안에는 책상과 의자만 줄지어 있었을 뿐 아무도 없었다. 복도에는 우리의 발소리와 숨소리와 말소리만 들릴 뿐 극도로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우리의 숨소리가 아주 크게 들리는 듯했고, 심장이 바쁘게 뛰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우리는 복도를 따라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제일 앞에는 훈이 형이 있었고, 그 뒤에 명이가 따라가고 있었으며, 그 뒤에 내가 있었다. 훈이 형은 마치 적 진지를 정탐하듯 조심스럽게 머리를 들어 교실을 들여다보곤 했는데, 그러던 중 갑자기 귀신이라도 본 듯 “으악”하고 출입구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그러자 나머지 아이들도 모두 비명을 지르면서 앞다퉈 건물 밖으로 탈출했다.


건물에서 한참 떨어진 곳까지 달려가서 담벼락 밑에 주저앉은 채 숨을 헐떡거리면서 골목대장인 정수 형이 말했다.

“훈아, 너 뭘 본 거야? 교실 안에 누가 있었어?”

정수 형이 훈이 형에게 물었다.

“나? 아무것도 못 봤는데.”

“뭐? 그럼 왜 갑자기 비명을 지르고 도망갔어?”

“뒤에서 얘가 나를 밀었어. 그래서 놀랐잖아.”

훈이 형이 손가락으로 명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게 다야? 그럼 너는 얘를 왜 밀었어?”

“어떤 사람이 복도 끝에서 계단으로 올라가는 거 못 봤어? 어떤 사람이 휙 지나간 거 같았는데.”

명이가 훈이 형을 밀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는 듯이 어리둥절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맞아. 그러고 보니까 위층에서 어떤 소리가 들린 것 같아.”

훈이 형이 거들었다.

“거짓말.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데… 니가 보긴 뭘 봤다는 거야?”

“아냐, 진짜야. 무슨 소리가 들리긴 했어.”


아이들은 자기가 분명히 듣거나 보았다고 떠들었다. 진짜인지 거짓인지 확인할 수 없는 말들을 하면서 우리는 깔깔대고 웃었다. 너무 웃어서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아이들은 공연히 서로 얼굴을 맞대고 침을 튀기면서 떠들었지만, 아무도 서로의 말을 믿지 않았다. 훈이 형도 명이도 그냥 장난 삼아서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그 누가 알겠는가. 믿거나 말거나, 정말로 그 건물 복도에서 누군가 지나갔을 수도 있고 우는 소리가 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누군가 그런 게 보였다거나 들렸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마음에 미리 공포심을 잔뜩 가지고 있을 때, 어린아이들은 상상과 현실을 자주 혼동하곤 한다. 어디까지가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헷갈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도 어렵다. 그 나이에는 그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니, 때때로 상상이 현실을 초월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 아이는 창문으로 빈 교실 안을 봤더니 교복을 입은 어떤 학생이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고 했고, 또 다른 아이는 아무도 없는데 칠판에 글씨가 저절로 써지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허풍에 허풍을 늘어놓고 떠들다가 우리는 문득 배고픔을 느꼈다. 온종일 뛰어다니고 말을 너무 많이 했으므로.


아이들은 원래 그렇다.

종종 현실과 상상 사이를 오가면서 헷갈리기 마련이다. 없었던 일이 있었던 것 같고, 있었던 일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배운 것과 들은 것과 본 것과 믿는 것과 믿고 싶은 것과 상상하는 것과 경험한 것이 모두 뒤죽박죽 뒤섞여 있기 마련이다. 그런 것들이 모두 정리되어 사리가 잘 분별되려면 아직 더 커야 하며, 상상과 현실이 혼돈스러운 그 유년의 알을 깨고 나가야 한다. 어른들은 그런 까닭으로 인해 아이들이 말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법이다.


그런 소동 후에 허기를 느낀 우리는 운동장 구석에 있는 수돗가로 갔다. 강남중학교 수돗가는 아주 널찍해서 수도꼭지가 여러 개 있었고 물도 시원하게 잘 나왔다. 우리는 거기서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으며 손발은 물론이고 얼굴과 머리까지 씻었고 아주 더울 때는 아예 웃통을 벗고 등목까지 했다.


수도꼭지를 손으로 막고 좁은 틈으로 삐져나오는 물을 마치 물총을 쏘듯이 마구 튀기는 것은 수돗가에서 흔히 하던 놀이다. 틈을 잘 막고 방향만 잘 맞추면 수도에서 나오는 물은 꽤 멀리까지 날아갔다. 그렇게 한바탕 물놀이를 하고 나면 우리가 입었던 옷과 신발은 거의 모두 젖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젖은 옷은 그냥 입고 다니다 보면 금세 말랐다. 그러다가 이따금 학교 경비원이 우리를 발견하고 고함을 치면 우리는 학교 밖으로 쫓겨나야 했다.


무더운 여름밤에 아이들은 저녁을 먹고 나서 또 모이곤 했다.

밤에는 시끄럽게 소리를 내면서 뛰어놀지 않았다. 그런 것은 누가 꼭 가르쳐서 아는 것이 아니라, 나이 들면서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다. 어두운 밤에 아이들은 밝은 가로등 밑이나 위에 전등이 켜진 부잣집 대문 앞 계단에 줄지어 앉아서 어디선가 들은 귀신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혹시 당신도 어릴 때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고 많이 전했을지 모르겠다.


어두운 밤에 변소 아래로부터 빨간 손이 올라왔다라거나, 아이가 죽어서 초상을 치르는 집 앞에서 어떤 아이가 울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애가 죽은 아이와 닮은 모습이었다라거나, 비 오는 밤마다 인적이 드문 거리에서 긴 머리에 하얀 소복을 입은 처녀가 택시를 잡아 탔는데 알고 보니 그곳이 그녀가 죽은 자리였다라거나, 시험에서 커닝을 한 학생이 선생님으로부터 혼이 난 후 억울하다면서 교실에서 목매달아 죽었다라거나, 비 오는 밤에 공동묘지에서 다리 없는 시신이 “내 다리 내놔라”라고 외치면서 따라왔다,라는 식의 이야기들 말이다.


공동묘지에서 “내 다리 내놔라!” 하면서 다리 잘린 시신이 따라왔다는 것은 나도 어릴 때 영화에서 본 이야기다. 늙으신 어머니가 앓아눕자, 효성이 가득한 아들이 깊은 슬픔에 잠겼을 때 지나가던 스님이 어머니 병을 낫게 하려면 비 오는 그믐밤에 공동묘지로 가서, 시체의 다리를 잘라 가지고 와서 어머니에게 푹 끓여 주면 낫는다고 했던 이야기. 그리하여 효심 깊은 아들은 비 내리는 그믐밤에 공동묘지로 가서 가마니로 덮은 시신을 찾아서 다리를 잘라서 가지고 내려오는 이야기. 그 다리를 품에 안고 허겁지겁 산을 내려올 때 뒤에서 다리 잘린 시체가 자기 다리 내놓으라고 외치면서 따라왔다는 이야기. 그래도 의로운 아들은 다리를 돌려주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서, 큰 가마솥에다 장작을 때어 그 다리를 푹 고았고, 어머니는 그 국을 먹고 말끔히 나았다는 괴담 아닌 미담 말이다.


아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스토리를 자기가 어디선가 듣고 보았던 이미지들로 전환시키고,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을 수 있는 묘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남이 하는 말에 적당히 대답하면서, 툭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서 나중에 물어보면 “뭐라고 그랬지?”라고 되묻곤 하는 어른들과 다른 아이들의 특성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간직한 스토리가 토씨 하나 틀림없이 그대로 살아남아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각자 고유하게 지니고 있던 이미지들로 대체되거나 덧씌워지고, 말하기 편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각색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빨간 손이 나왔다는 변소가 파란불이 떠도는 냇가로 변하기도 하고, 초상집 앞에서 울고 있던 아이가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되기도 하고, 공동묘지에 가야 했던 시간이 비 내리는 그믐밤이 아니라 보름달이 환한 밤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동네마다 또 말하거나 듣는 사람마다 내용은 약간씩 다르지만, 실은 모두 비슷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어떤 버전이 됐든, 머리에 아직 외우고 채울 기억의 공간이 많고 상상력과 현실이 가끔씩 혼동되는 아이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이미지로 깊이 남아서 죽을 때까지 잘 잊히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어릴 때 수도 없이 많은 밤에 그런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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