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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정읍 여행에 앞서

고창-정읍 여행기 (1)

by memory 최호인

2023년 10월 초, 나의 오랜 친구인 혁국, 재관, 종필과 함께 했던 1박 2일 여행에 관한 이야기다. 여행에 앞서 나의 상황과 서울에서 겪었던 경험을 먼저 설명하고자 한다. 당시 상황이 이번 여행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중요했기 때문이다.


1.


올해 나의 서울 여행은 4년여 만이고, 코로나19 이후 처음이다. 불행하게도, 뉴욕에서 서울로 오기 전부터 나는 몸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탈장수술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탈장은 유전적인 요인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과도한 운동에 의해 발생할 수도 있다. 주치의는 탈장이 긴급한 치료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약을 통해서 또는 저절로 낫는 병은 아니므로 반드시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서울에 여행을 갈 때 수술을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탈장은 때때로 약간 불편할 때가 있을 뿐 특별히 아픈 느낌이 드는 병이 아니다. 탈장수술을 한 지인들도, 의사인 나의 조카도, 탈장 수술이 매우 간단한 수술이라고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나 역시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므로 서울에 오는 김에 수술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미국에서 수술을 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한국 의료시스템이 더 편하고 좋다고 생각했다. 미국인들의 눈으로 보면, 한국은 의료천국에 가깝다. 한국의 의료기술은 높은 편이고 치료는 신속하고 친절하게 진행되어서 서비스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한국의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웬만한 치료 비용은 미국에서 건강보험을 적용한 것에 비해서도 적게 든다.


서울에 있는 여러 친구들에게 탈장수술에 관한 정보를 물었지만 하필 거기에 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름대로 인터넷에서 조사하고 병원을 세 곳이나 돌아다닌 후에 나는 결국 강남에 있는 한 병원에서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추석 연휴라 수술 날짜를 잡기가 어려웠지만, 한국 여행 기간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나는 의사에게 가능한 한 조속한 수술을 부탁했다. 그리하여 10월 2일에 수술하고 입원하여 3일에 퇴원하기로 했다.


난생처음 해본 수술과 입원이었다. 수술은 잘 된 듯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보다 수술 후에 매우 힘들었다. 특히 수술 후유증으로 배뇨장애가 찾아와서 고생했다. 수술 과정에서 방광 부근의 신경에 영향을 주어서 발생하는 배뇨장애는 탈장수술의 대표적인 후유증이다. 배뇨장애는 처음에는 매우 심했지만, 의사가 말한 대로 일주일 정도 지나면서 해소됐다.



2.


9월 중순에 서울에 도착했을 때부터 나는 혁국에게 지방으로 여행 가자고 제의했었다. 그는 내가 여행을 함께 가자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깝고 믿을 만한 친구다. 5년 전에도 우리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군산과 전주를 1박 2일 여정으로 다녀온 바 있다. 그때의 여행 기억이 좋아서 나는 이번에도 그에게 선뜻 함께 여행 가자고 말했던 것이다. 그는 나의 여행 일정에 맞춰서 이번에는 고창과 정읍을 1박 2일로 다녀오자고 했다.


그런데 그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이라 주중에는 여행이 불가능했다. 재관은 은퇴한 상황이라 여행 날짜에 구애받지 않았지만, 종필도 주말에 여행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나대로 이번 여행 기간에 한국에서 종합건강검진과 탈장수술을 해야 했으므로 날짜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탈장수술하기에 며칠 앞서, 혁국은 여러 사정을 고려한 결과 여행 날짜를 10월 7일과 8일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10월에는 주말마다 할 일이 많아서 다른 날짜를 잡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7일이라면 수술 후에 겨우 닷새가 지나는 시점이라, 나는 약간 걱정이 됐다. 수술 후에는 예상보다 몸이 더 힘들었으므로 나는 과연 장거리여행을 할 수 있을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탈장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내가 전라북도까지 여행 갈 것이라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가셔도 되지만, 절대로 무리하면 안 됩니다. 또 수술 후에는 한 달간 절대로 술을 마시면 안 됩니다.”


조금 안타깝지만 한 달간 금주는 그렇다 치고, “무리하면 안 된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뛰어다니지 말라는 말인지, 멀리 또 많이 걸으면 안 된다는 말인지 헷갈렸다. 걷기를 얼마나 자제해야 하는지, 오르막길 또는 내리막길은 괜찮은지, 차에 그렇게 오래 앉아 있어도 되는지, 등등 의문이 일었지만 구체적인 대답을 구할 수 없었다.


의사는 그저 “무리하면 안 된다”라고 간단하게 말했을 뿐인데, 나는 ‘무리’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처럼 어리둥절해지는 기분이었다. ‘무리’가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 상대적인 의미라고 짐작하면서도 어딘가 불안함을 없앨 수는 없었다.


하여간 무엇보다 내 몸 상태가 중요했으므로 나는 신중해야 했다. 한국 여행이 끝나면 뉴욕으로 돌아가야 하므로 나는 이곳에 집과 가족과 의료보험이 있는 한국인들처럼 생각하거나 행동할 수 없었다. 나는 혼자였고, 한국의 의료보험도 없으며, 체류 기간도 한정되어 있었다.


혹시라도 ‘무리해서’ 수술 부위가 터지거나, 여행을 갔다가 지방에서 아픈 게 심해지면 매우 난감한 일이 될 것이었다. 또한 혹시라도 내가 아프다고 해서 기껏 여행을 떠난 친구들을 불편하게 해서도 안 된다는 심리적 부담감도 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행하게도 입원한 날부터 감기 증세까지 심해졌다. 눈과 목이 아프고 몸은 더욱 피곤해져서 마음까지 심란해졌다.



3.


수술 후에 숙소에 누워서 나는 혁국에게 탈장수술 후 몸 상태와 후유증에 관해 설명했다.


주먹 크기의 플라스틱 통에 담긴 진통제를 목에 걸고 있고, 팔에 꽂힌 주사를 통해 진통제를 주입하고 있는 상황이며, 배뇨장애로 고생하고 있고, 이 같은 상황으로 인해 배가 고파도 밖으로 나가기 불편한 상태라고.

며칠 후까지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다 해도 오래 걷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그래도 여행에 나를 데리고 간다면, 과장해서 말한다면, 아마도 환자를 수송하는 기분으로 나를 데리고 다녀야 할지 모른다고.

이런 상황이라, 함께 여행하는 친구들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 그런 것이 불편할 것 같으면 차라리 나를 빼고 여행을 가거나 아예 여행을 포기하자고.


혁국은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정도의 고통은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듯, 아주 자연스럽게 내가 여행을 가야 하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으므로 나는 내심 고맙게 생각했다. 나중에 재관과 종필도 나에게, “그건 니가 알아서 ‘무리’ 하지 않도록 하라”고 웃으면서 농담으로 말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의 예상은 사실이 됐다.

나는 여행 내내 힘없이 늘어져서 병든 닭과 같은 신세였다. 약 기운 때문인지, 감기 기운 때문인지, 수술 후 피곤함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나는 활기를 찾지 못했고, 차를 타기만 하면 졸거나 잠에 빠졌다. 모처럼 친구들과 함께 한 여행인데 그런 모습을 보여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따지고 보면, 볼 건 다 보고 먹을 건 다 먹은 셈이다.

재관은 여느 때처럼 유머를 섞어서 여행 내내 분위기를 잘 살렸고, 혁국은 듬직하게 여행을 지휘했으며, 종필과 나는 그들을 잘 따라 움직였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실 수는 없었지만, 내가 본래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것은 별로 아쉽거나 안타깝지 않다.


그렇게 다행히 우리는 1박 2일 여정을 무사히 마쳤고,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다.

여행지도 좋았고, 날씨도 좋았고, 무엇보다 운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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