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고인돌로 유명한 곳은 고창, 화순, 강화 세 지역이다. 거대한 바위를 이용하여 만든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인 고인돌은 이 세 지역에 각각 수백 기 이상이 집중 분포되어 있다. 고인돌이 이처럼 집중되어 있고 다양하고 완성된 원형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로 인해 이 세 지역은 고창, 화순, 강화 순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고창의 고인돌 집단 군락지에는 고창읍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동서로 약 1,764미터 범위 내에 447기가 분포되어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가장 밀집된 고인돌 군락이다. 이를 통해 한반도 청동기 시대의 사회문화와 묘제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한반도에 있는 고인돌을 모두 합하면 세계 전체 고인돌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그야말로 고인돌의 나라다.
고인돌을 그냥 죽은 자 위에 올려놓는 관 뚜껑 같은 돌덩어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거대한 고인돌이 있다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다. 고창에 있는 고인돌의 덮개돌 가운데는 무게가 300톤에 달하는 것도 있다. 그런 무게의 돌을 운반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노동력과 기술력이 요구된다. 그것은 그 시대 그 사회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그 고인돌 아래에는 대체로 군왕의 권력을 상징하는 각종 청동기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고인돌이 한반도 중부 이남에 많다는 것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 시대에 한반도와 한반도에 있었던 사람들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무거운 바위를 이동시킬 수 있을 만큼 집약적 노동과 기술을 갖춘 고도의 정치권력 사회가 이곳에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일부 연구자들은 고대 한반도가 세계문명의 출발점이었다고 추측하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고인돌 문화가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추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학계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한반도가 문명의 출발점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식민지 사학의 잔재라고도 하지만…자신들의 주장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할 더욱 정밀하고 추가적인 자료가 요구되는 것이 현실이다.)
2. 봤지? 고인돌박물관. 그럼 됐어.
우리는 고인돌박물관 앞까지 갔다.
박물관 앞에도 커다란 고인돌이 놓여 있었다. 고인돌박물관 또한 고인돌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우리가 고인돌을 봐도 큰 감흥이 없는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달리, 우리가 어릴 때부터 고인돌에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맛있는 과자도 어릴 때부터 자주 먹는 아이가 그 맛의 기쁨을 잘 모르는 것처럼,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고인돌도 어릴 때부터 (한국사 수업에서나마) 자꾸 접하다 보면 그 의미를 잘 평가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미안하게도, 박물관 앞까지 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인돌박물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적어도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내용이 전시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고인돌을 보기 위해 긴 걸음을 하기도 귀찮아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우리가 이제 늙고 나태해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만, 겸연쩍고 뻔히 알고 있는 일이라 입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이미 어릴 때부터 자주 들었던 고인돌이고, 다른 곳에서도 보았던 고인돌이고, 우리에게는 익숙한 고인돌이라 생각하고, 우리는 거기서 그냥 돌아섰다.
사실 나는 오래전에 강화도에서 고인돌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다. 그때도 그랬을 것이다. 처음에만, "와, 이게 고인돌이구나" 하면서. 남방식이니 북방식이니 떠들다가, 그런데 왜 강화도에 이런 게 있지 하고 떠들다가, 명확한 답도 찾지 못한 채 이내 돌아섰을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참고로 설명하자면, 북방식고인돌은 굄돌이 탁자 다리처럼 높다고 해서 '탁자식 고인돌'이라 하고, 남방식고인돌은 굄돌 높이가 낮아서 '바둑판식 고인돌'이라고 한다. 주로 한강을 기준으로 북쪽에는 북방식, 남쪽에는 남방식 고인돌이라 하지만, 요즘은 이런 구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한다.
“자, 고창고인돌박물관 봤지? 그럼 됐지 뭐. 이제 돌아가자.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아.”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는 서둘러 자동차로 돌아왔다. 친구들은 오늘 일정을 빨리 마치고 정읍으로 가기를 바라고 있다. 거기에서 저녁 식사를 할 계획이므로.
그러나 정읍으로 가기 전에 오늘의 마지막 여정으로 들를 곳이 한 곳 더 있었다.
영모정.
나는 아마도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정자이겠거니, 생각하면서 차에 올랐다.
3. 세 개의 영모정
‘영모(永慕)’는 ‘오래도록 사모한다’는 의미이고, 영모정(永慕亭)은 ‘어버이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를 뜻한다. 한국에서는 진안과 나주, 그리고 고창의 영모정이 유명하다. 모두 전라도에 있다.
전남 나주에 있는 영모정은 중종 15년 (1520년)에 지은 것으로, 원래 귀래정이라고 했다가 명종 10년(1555년)에 영모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호가 귀래정인 문필가 임붕(1486~1553)이 부친을 위해 정자를 세우려고 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그의 아들이 귀래정을 지었다고 한다. 영산강을 내다보는 이곳에서 임붕의 손자인 명문장가 백호 임제가 시를 짓고 사람들과 교제했다고 한다.
전북 진안의 영모정은 1869년(고종 6년)에 미계 신의연(1581~)의 효행을 기리고자 지어진 정자다. 미재천 냇가에 자리 잡은 이 누각은 전면 4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는데, 지붕에 너와를 사용했으며, 내부에도 12개의 기둥이 있는 점이 특이하다.
4. 고창 영모정과 두암초당
우리가 방문한 영모정은 이 가운데 고창 영모정이다.
고창 영모정은 두암초당과 함께 매우 커다란 민둥바위 아래 있어서 눈길을 끈다. 나무도 나지 않고 절벽처럼 치솟아올라 눈에 띄는 특이한 거대한 바위라는 말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어떤 바위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곳 영모정으로 들어가려면 특이하게도,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에 있는 아산초등학교 뒤로 들어가야 한다. 들어가다 보면 학교 건물과 창고도 있다. 그런 건물 바로 옆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때로는 관광객들이 많이 오기도 할 텐데, 입구가 이런 모양이어서 어색하기는 하다. 수시로 관광객이 드나들면 아산초등학교는 어떻게 하나 싶다. 관광객들은 학교 건물 내부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기도 할 텐데.
하여간 이 학교 뒤에 거대한 전좌바위(두락암)가 솟아 있다. 절벽 같은 바위 아래에 있는 건물이 영모정이고, 절벽 중간에 붙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 두암초당이다. 이 영모정과 두암초당은 호암 변성온(1530~1614)과 인천 변성진(1549~1723) 형제가 만년에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 정자가 있는 바위를 두락암이라고 부르는 것은 곡물을 터는 데 사용하는 기구를 씌운 바위라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다.
절벽 아래에 있는 영모정은 그저 민가처럼 보여서 그렇다 치고, 두암초당이란 건물을 왜 저곳에 지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초당이란, 원래 억새나 짚, 풀 등으로 지붕을 이어 만든 작은 집을 말한다. 그러나 두암초당은 그렇게 허술하게 지은 집은 아니다. 절벽 바위 중간을 작은 동굴 파듯이 파서 건물의 상당 부분을 그 구멍 안에 지은 집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중간에다 만들었으니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얼핏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빼어날 수도 있지만, 앞에 물이 흐르는 것도 아닌 듯한데… 도대체 거기까지 올라가서 무엇을 하려고 했을까 싶다. 고생스럽게 올라가도, 밥이라도 먹거나 물이라도 마시려면 한참 내려와야 하는 곳인데… 그곳에 화장실도 없고 말이다. 나처럼 선조들의 뜻을 잘 모르는 사람이 하는 상상이다.
어쩌면 거대한 바위가 주는 영험한 기운 또는 정기를 받아들이고자 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조금 더 사실을 밝히자면, 우리가 보는 높이 35미터의 두락암은, 하늘에서 보면 더 거대한 바위의 우측 면이다. 이 바위를 아주 멀리서 보면 평지에서 불쑥 솟은, 정말로 거대하고 독특한 모양이다. 이것이 병바위와 소반바위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보았던 두락암, 전좌바위는 소반바위의 한 측면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사람 얼굴 또는 엎어진 호리병 모양으로 보인다. 병바위는 소반바위 앞쪽에 말 그대로 병처럼 솟아오른 바위이다.
(하늘에서 찍은 병바위와 소반사진을 보면서 나는 병바위가 코뿔소의 코뿔, 소반바위가 코뿔소의 몸체, 두락암이 코뿔소의 엉덩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코뿔소가 아니라 코끼리라고 해도 비슷하다. 아무튼 바위 전체를 보면 묘한 모양이어서, 보는 사람마다 다른 상상력에 취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