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정읍 여행기 (6)
고창에서 정읍으로 가는 길은 한가로웠다.
그냥 전북의 넓은 평야를 가로지르는 기분이다.
정읍에 들어선 후 우리는 곧바로 혁국이 정읍 시내에 예약한 모텔로 갔다. 먼저 숙소를 확인하고 저녁을 먹으러 걸어가겠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저녁 식사 때는 그도 술을 마실 계획이었으므로.
거리를 걷다 보니, 정읍은 예상외로 크고 깨끗한 도시다. 식당이 의외로 멀어서 도시 중앙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한참 걸었는데, 도로 양쪽에 상점들이 많으면서도 깨끗했고 거리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거리가 깨끗하네. 정읍이 의외로 크고 괜찮아 보인다.”
정읍을 처음 방문한 나는 예상밖 풍경을 보고 첫인상이 좋다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정읍시는 전라북도에서 인구 순위로는 전주, 익산, 군산에 이어 네 번째로 큰 도시이다. 2023년 6월 현재 인구는 10만 4천여 명에 이른다. (참고로 전주는 64만여 명, 익산은 27만 명, 군산은 26만 명) 4년 전에 갔던 전주나 군산은 분명히 큰 도시로 느껴졌었지만, 정읍은 그에 비하면 역시 그리 큰 도시가 아니다. 그런데도 정읍은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정읍은 고창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거리에 있다. 혁국이 정읍시에 예약한 모텔은 6층 건물이었다. 제법 방이 크고 풀사이즈 침대가 두 개씩 있는 특실은 층마다 한 개씩 있었는데, 그는 그 가운데 5층과 6층에 있는 특실을 예약했다. 종필과 재관은 5층 특실을, 혁국과 나는 6층 특실을 차지했다.
4년 전에도 그랬지만, 나는 혁국이 예약하는 모텔이 무척 낯설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호텔’ 또는 '모텔'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모습과는 매우 다르다. 어쩌면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모텔 풍경인 듯하다. 다른 나라 어디에서도 이런 모습의 모텔을 본 적이 없다. 한국사람들은 이런 모텔을 흔히 ‘러브호텔’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떤 친구는 '호텔'이라고 부르고 '모텔'이라고 쓴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호텔과 모텔이 마구잡이로 혼용되고 있다.
외국 사람이 '러브호텔'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뭔가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모텔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리 사랑스럽지는 않다. 일단 모텔의 주차장부터 조금 음습한 기운이 돈다. 자동차가 들어가는 입구에 아주 가끔 음식점 주방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어중된 높이의 발이 쳐져 있다. 그러한 모습이 된 것은 주차장 안에 있는 자동차를 외부로부터 가리는 동시에 모텔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자 하는 친절함(?) 때문이다.
이런 모텔은 이상하게 엘리베이터도 무척 작다. 건물이 작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아무튼 세네 명만 들어가도 매우 비좁게 느껴지는 크기이다. 우리 네 명이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면서 서로 너무 가깝게 붙어 서서 거북한 느낌이 들었을 때, 나는 일부러 한 커플 이상 들어오지 말라고 엘리베이터를 이렇게 만들어놓았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엘리베이터를 나서면 모텔 복도가 전혀 밝지 않다. 어두침침하고 음습하다. 일반적으로 호텔 복도는 밝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모텔은 전혀 딴판이다.
때로는 복도에 붉은 조명이 있기도 해서 그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은 약간 괴이하면서 불안하게 느낀다. 방을 찾아서 들어가면 특이하게도 문은 이중으로 되어 있다. 이 모텔이 그렇다는 것이지, 모든 모텔이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하여간 이중문은 아마 내부의 소음이 바깥으로 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 모텔은 그렇지 않지만, 특이하게 보이는 화장실을 갖춘 모텔도 있다. 일본식인지 모르겠지만, 샤워실과 소대변을 보는 변소가 분리되어 있는 모텔도 있고 샤워실 문이 없는 모텔도 있다. 어쩌면 그것이 러브호텔 샤워실의 가장 큰 특징일지 모른다. 화장실 겸 샤워실에 문이 아예 없기도 하고, 문이 있다고 해도 방에서 샤워실 안을 볼 수 있도록 벽이 투명하거나 반투명한 유리로 꾸며져 있다. 친척이나 친구끼리 미리 알지 못한 채 이런 방에 함께 묵게 되면 매우 난감할 것이 분명하다.
가장 ‘한국적’이고 특이하고 묘하게 느끼는 것은, 모텔 방 테이블 위에 필통 케이스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 케이스 안에는 1회용 칫솔과 치약 등 세면도구가 있어서 나는 매우 친절하고 편리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거기에 ‘콘돔’ 등 성인용품들도 함께 있어서 깜짝 놀란다. 정읍의 모텔 방에도 어김없이 그 필통 케이스가 보였다.
4년 전에 교회 친구들과 공주로 여행을 갔을 때도 그런 경험이 있다. 여행에 앞서 에어비앤비를 통해 방 하나를 예약했는데, 가서 보니 화장실 문이 없는 곳이었고, 방에서 화장실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었다. 미리 알았다면 예약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곳에 가서 알았으므로 어쩔 수 없이 하룻밤을 묵었다. 처음 보는 모텔 구조라서 너무 뜻밖이었고 놀랐으며,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었다.
이번 한국 방문 중 ‘부산에서 한 달 살기’ 후에 출국하기 전에 서울로 돌아와서 하남에서 사흘간 머물렀던 호텔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남에 사는 친구가 자기 집 근처에 잡아준 호텔이었다. 미사역 바로 근처였으며 높은 건물의 7층과 8층만 사용하는 곳이었다. 안쪽 벽 전체에 꾸민 통창문에서 넓은 공원이 내려다보이고, 저녁에는 노을이 물드는 서쪽 하늘을 볼 수 있는 방이었다.
하남시는 거의 신도시로 여겨지기도 하거니와, 특히 미사역 부근에는 온통 새로 지은 고층 건물들만 있다. 그 바람에 밤에 지하철 미사역에서 내려서 호텔 방을 찾아가는 데 애를 먹었다. 나는 미사역에 처음 가본 것이므로 그곳 지리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카카오맵을 보고 겨우 건물을 찾아서 도착했다 해도, 낯선 거리에 모두 비슷한 모양의 건물들만 보일 뿐이고 건물 번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호텔이 입주한 건물이 너무 커서 내가 들어가야 하는 입구가 어디 있는지 찾기도 어려웠다.
하남의 호텔은 정읍의 모텔보다 훨씬 밝고 현대적인 느낌을 주긴 했지만, 내 친구는 이런 호텔을 보통 ‘러브호텔’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런 호텔은 주로 ‘잠깐’ 쉬고 가는 손님들이 많은 곳이라, 나처럼 사흘씩이나 묵는 사람은 드물다고 했다.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필통 케이스’는 그곳에서도 발견됐다. 나는 다음날 아침에 프런트데스크에 들러서 내 방을 청소하지 말도록 요청했다. 어차피 낮에는 온종일 나가 있다가 밤에만 자러 들어가는 곳이었으므로 청소할 것도 없었다.
한국의 모든 모텔이 이렇게 꾸며진 것은 아니겠지만, 다른 나라 어디에서도 이런 풍경과 설비를 갖춘 모텔을 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는 한적한 시골을 가도 이런 느낌을 주는 모텔이 번듯이 산 중턱이나 동네 한가운데 있는 것을 보곤 한다. 이런 모텔을 모두 ‘러브호텔’이라고 부르는지도 의문이다.
러브호텔의 존재이유와 효용에 관해서는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것이 한국만의 사정은 아니겠지만, 러브호텔에 관한 한 어쩌면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호텔 서비스이자 건축 양식(?)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숙박시설은 놀랍도록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특히 러브호텔은 빠르게 진화한 듯하다. 한국에서 다양한 숙박시설이 발전하고 늘어난 것은, 여행객들의 숙박 선택권을 편리하고 풍부하게 해 줘서 다행이지만, 러브호텔은 여전히 매우 낯설고 불편해 보인다.
모텔에 가방을 풀어놓고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정읍 거리로 나갔다. 정읍은 예상했던 것보다 매우 깨끗하고 세련된 도시다. 이미 매우 시골스럽고 다정하기도 한 고창을 보고 와서 그런지 정읍은 말 그대로 정갈한 도시같이 보였다.
우리는 정읍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주된 도로인 충정로를 걸었다. 거리 양쪽으로 비교적 반듯하고 잘 정리된 가게들이 끝없이 줄지어 있었다. 정읍이 비교적 큰 도시임을 알 수 있는 풍경이다. 우리가 걷는 넓은 도로 뒤편에도 또 다른 비슷한 도로가 있고 거기에도 길을 따라 상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 것은 시골의 작은 도시라면 보기 힘든 풍경이다.
“정읍이 무척 크고 좋아 보인다. 이렇게 큰 도시인지 몰랐네.”
식당에서 너무 먼 곳에다 모텔을 잡았다고, 그래서 식당까지 한참 걸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혁국을 부지런히 따라가면서 나는 말했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정읍이 작은 곳이 아니야. 인근 시골 주민들이 ‘읍내’에 간다 하면 여기로 올 정도로 정읍이 큰 곳이지. 이 근처에서 사람들이 쇼핑하러 간다고 하면 여기로 와야 해.”
우리는 매우 길고 곧게 뻗은 충정로를 따라서 수십 분간 걸었다. 시월 초 이른 저녁이라 공기는 맑았고 걷기에도 기분이 좋았다. 혁국이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막걸리 전문 식당이다. 그 식당은 어떤 의미에서는 4년 전에 전주로 여행 갔을 때 저녁 식사를 했던 식당과 비슷하다. 혁국도 그런 것을 기억해서 이 식당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 것일 수 있다. 그런 식당에서는 막걸리를 주전자에다 주고, 매우 많은 반찬을 식탁에다 차례로 갖다 준다.
전주 여행 후에 나는 그때의 만찬을 극찬했었다. 매우 기분 좋게 막걸리를 마셨고 정말 많은 종류의 반찬과 음식을 맛있게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읍의 식당은 그때 식사에 비해 여러모로 모자랐다. 전주의 막걸리 한상 집에 비해 음식의 질도 낮았고 양도 적었고 맛도 덜했다. 게다가 식당의 여주인은 듣기에 거북하게 적당히 욕을 섞어가면서 손님에게 ‘반말’을 잘했다. 그런 어법을 재미있게 듣고 응수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것을 신기해하거나 반갑게 받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래도 혁국과 재관과 종필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먹고 마셨다. 운전하느라고 온종일 술을 못 마신 혁국은 때가 왔다는 듯이 막걸리를 마셨다. 종필은 얼굴이 시뻘게진 가운데 술을 마셨지만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그는 나이에 맞지 않게 놀라울 정도로 몸이 날렵하고 건강하다. 그의 정 많은 시골스러움은 자동차를 타고 올 때도 드러났다. 아침에 자동차 뒷좌석에 자리를 잡자마자 그는 가방에서 찐 옥수수를 꺼내서 우리에게 내밀었다. 조금 후에는 날밤을 꺼내었고, 가방에서 과도까지 꺼내어 밤 껍데기를 깠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그는 껍질을 벗긴 밤을 혼자서만 먹지 않고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나는 그렇게 시골스러운 먹거리를 준비해 와서 차 안에서 그런 방식으로 먹는 ‘남자’를 처음 보았다. 절대로 남녀를 차별하는 의미에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결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종필은 완전히 달랐다. 그렇다고 종필이 남성스럽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의 외모에는 여성스러운 구석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그의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을 때도 존댓말을 사용해서 통화할 정도로 그는 그저 매우 점잖고 공손하고 다정한 사람일 뿐이다.
재관에게도 놀랐다. 그는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다가 수년 전에 은퇴했다. 요즘은 취미로 배드민턴을 즐기고 있는데, 일주일에 네댓 번 오후에 배드민턴을 치러 간다. 그렇게 열심히 배드민턴을 하다가 몇 달 전인가에는 발목 인대가 끊어졌다나 뭐라나, 해서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한 채 한 달간 버티었다고 한다. 나이 들어서 갑자기 무리해서 운동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몸소 실증해 보이는(?) 모범적 교사임이 틀림없다.
경주 특유의 말버릇인지 그만의 독특한 억양인지 모르지만, 재관은 그만 가진 남다른 말투로 이번 여행에서 줄곧 혁국 옆에 앉아서 끊임없이 길을 안내했다. 자동차 뒤에 처박혀서 아프다면서 약에 취해 잠만 자는 허약한 나와 비교적 말이 없는 종필과 달리, 재관은 혹시라도 졸거나 길을 놓칠지도 모를 혁국을 위해 끊임없이 말을 걸면서 길을 안내했다. 그는 묵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조수석에서 자동차 맵과 핸드폰 맵 두 개를 꺼내어 놓고 비교해 가면서 운전 방향과 시간을 재고 혁국과 올바른 길을 논의했다. 놀라운 체력과 인내력과 집중력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하여, 나는 그들 모두를 이번 여행에서 새로 알게 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혁국은 내일 아침까지는 차를 운전하지 않는다는 안도감 속에 막걸리를 많이 마셨다. 주전자에 있는 막걸리를 다 마시면, 숟가락으로 찌그러진 주전자를 탕탕 쳐야 한다. 처음에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주모” 또는 ”‘여기요” 또는 “사장님”이라고 불렀는데, 주인아주머니는 우리 앞에 서서 몸소 빈 주전자를 숟가락으로 땅땅 때리면서 그렇게 해야 온다고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다음부터 우리는 빈 주전자를 숟가락으로 두드렸고, ‘주모’는 소리를 듣고 찾아왔다. 작은 주전자이긴 하지만, 세 주전자나 마셨으니 친구들이 각자 한 주전자씩 마신 셈이다.
그렇게 많이 먹고 마신 후에 우리는 약간 휘청거리면서 충정로를 되짚어 숙소로 걸어서 돌아갔다. 중간에 어느 식당에 들어가서 안주거리까지 샀다. 아직 열지도 않은 술병이 모텔에 또 있었으니까. 숙소에는 종필이 서울부터 가지고 온 술 한 병이 있었다. 중국산 술이었는데,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술이었나 보다. 5층 모텔 특실에서 우리 넷은 다시 둘러앉았다. 술병을 따고 또 한참 동안 마시면서 떠들었다. 그렇게 떠들었는데 희한하게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결국 자정도 넘어서 술자리가 끝나고 혁국과 나는 6층으로 올라갔다. 낯선 모텔 방, 나의 옆 침대에서 먼저 잠이 든 그는 다음날 아침 나보다 먼저 일어났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시고 늦게 자도 그가 일어나는 시간은 항상 똑같다고 한다. 아마 아직도 젊어서 그런가,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그는 간밤에 취한 모습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으며, ‘멀쩡한’(?) 사람이 되어 운전석에 앉았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친절한 그는 종합 관광안내사가 되어 자동차를 운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