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정읍 구절초 축제

고창-정읍 여행기 (7)

by memory 최호인

1. 구절초가 도대체 무엇이냐


10월 8일 아침.

간밤에 과음했지만, 친구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아침에 모두 잘 일어났다.

예정대로 우리는 8시에 모텔을 나섰다.

아침을 먹기 위해서.


그 시간에 아침을 먹는 게 나는 여전히 어색했지만, 아무 어려움 없이 일어난 듯 보이는 혁국을 따라서 서둘러 채비를 하고 모텔 밖으로 나갔다. 종필과 재관도 늦지 않고 주차장으로 나왔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혁국과 나는 모텔을 체크아웃하고 곧바로 떠나도 될 준비를 마쳤지만, 재관과 종필은 아침 식사 후에 방으로 돌아가서 마저 짐을 싸겠다고 생각했던 정도다.


지난밤에 그렇게 술을 마시고도 아침에 잘 일어나는 그들을 보면 참 신기하다. 나라면 아침이 되어도 그냥 뻗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참으로 강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한국의 중년 남성들은 평생 그렇게 사는 것이 습관이 됐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는 콩나물국밥으로 유명한 ‘현대옥’ 식당으로 갔다. 뭘 먹어야 할지 잘 모를 때 가장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콩나물국밥이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특히 아침에 뜨거운 콩나물국밥은 정말 든든하고 좋은 식사다. 식사 후에 편의점으로 가서 뜨거운 커피를 사고, 우리는 정읍 시내를 벗어나 구절초축제가 벌어지는 곳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 전에 나는 ‘구절초’가 뭔지 몰랐다. 그것이 국화의 일종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구절초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구절초라는 이름은 아홉 번 꺾이는 풀, 또는 음력 9월 9일에 꺾는 풀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9월~11월에 담홍색 또는 흰색으로 피며, 주로 높은 지대 능선에서 군락을 형성하며 자라지만 들에서도 흔히 자라며,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정읍시는 구절초가 만개하는 10월이면 해마다 축제를 벌이고 있다. 올해 구절초 축제는 10월 5일부터 15일까지 11일간 열리는데, 엄청나게 큰 규모로 진행되고 있었다. 축제 장소로 가는 길목에 수많은 정읍시 행사 관계자들이 나와서 도로를 통제하고 안내하고 있었다. 어쩌면 정읍시의 모든 공무원들과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동원되지 않았을까 짐작할 정도로 안내자들이 많았다.


구절초축제 장소 또한 매우 거대했다. 이미 과거에 이 축제를 보러 왔었던 혁국의 말에 따르면 올해 축제 장소는 더욱 커졌다고 한다. 그에 따라 자동차 주차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부각됐다. 정읍시는 축제 장소로 들어가기 전에 여러 개의 주차장을 마련하고 차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들의 안내대로 간다면 입구에서 점점 멀어져서 주차 후에 무척 많이 걸어야 할 것이라고 혁국이 말했다. 그러면서 혁국은 그들의 통제를 요령껏 잘 물리치고(?) 최대한 입구 근처로 깊숙하게 들어갔다.


나라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오직 그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순전히 혁국 덕분에 우리는 비교적 행사장 입구 가까운 곳까지 차를 몰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도 문제는 또 있었다. 입장료가 1인당 7천 원이나 되었다. 지금까지 보았던 여러 관광지 입장료 중 가장 비싼 축에 들어간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그 7천 원 가운데 4천 원은 상품권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입장료는 3천 원인 셈이다. 상품권은 정읍시에서 사용하면 되는데, 실제로는 그 축제장에 들어가서 거의 다 쓰게 된다. 그 안에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대단히 많기 때문이다.


고창정읍여행 (35).jpg
고창정읍여행 (37).jpg


구절초 축제장은 대단히 넓었다. 입구는 매우 아름답게 꾸며진 곳이다. 물을 어떻게 끌어들인 것인지 모르지만, 인공 호수와 인공 폭포 같은 것들이 매우 예쁘고 아담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축제장에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고, 먹거리 장터 또한 엄청나게 컸다. 수많은 천막 식당들이 줄지어 늘어섰고, 아마도 정읍의 아낙네들이 모두 모여서 음식을 준비하고 판매하는 듯했다.


산과 능선에는 붉고 푸르고 하얀 꽃들이 거대한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너무 넓어서 모두 다닐 수 없을 정도다. 정읍구절초축제가 왜 유명한지 이해할 만했다.


만약 우리 가운데 여성 친구가 있었다면, 분명히 “아 예뻐라. 너무 예쁘지 않니?”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반 노인이 된 우리 사내들은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보는 것도,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것도 전혀 익숙하지 않다. 그저 멀뚱멀뚱 아름다운 구절초들을 바라보고 나서… 최대한 신속하게 축제장을 빠져나왔다.

혁국의 계획대로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왔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축제를 돌아볼 수 있었지만, 오후에 오는 사람들은 아마 입장하기도 어려웠을 것으로 확신할 수 있다. 주차도 몹시 힘들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먹거리 장터도 아수라장이 될 것만 같았다.


우리가 나올 때 보니, 수많은 차량들이 입구에서 먼 주차장에 주차했을 뿐 아니라, 주차장이 아닌 길가에 주차한 차들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우리는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뭔가 큰 이익이라도 쟁취한 듯 , “일찍 오길 잘했다”라고 서로 칭찬했다. 친구들은 그새 점심 식사 시간이 되었다면서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또한 다음 일정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잽싸게 정읍으로 돌아가야 했다.


고창정읍여행 (39).jpg
고창정읍여행 (38).jpg


2. 벽골제는 그냥 통과


구절초 축제에서 나와서 원래 우리는 곧바로 김제에 있는 ‘벽골제’로 먼저 가려고 했었다. 김제 쪽으로 온 김에 빨리 둘러보고 가려고 했던 것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330년에 축조된 벽골제는 한반도의 인공 저수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현재는 더 이상 저수지 기능은 없지만, 수문지임을 알려주는 석주가 남아 있다.


그곳에서 매년 10월에 ‘지평선 축제’를 연다. 김제의 전통 벼농사 문화로서 지역 신화를 재구성한 야외공원이 펼쳐지고 먹거리 장터가 열린다. 마라톤 대회까지 함께 열리면서 대규모 지역 축제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우리 자동차가 벽골제로 다가가고 있을 때 갑자기 혁국이 “여기는 안 된다. 그냥 가야겠다”고 말했다. 벽골제가 있는 도로에 수많은 자동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축제 때문에 인파가 몰린 탓이다. 그곳으로 가는 도로에 들어서면 돌아 나오는 것도 쉽지 않을 만큼 차들이 도로 양쪽에 빼곡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혁국이 그 광경을 미리 발견한 것이 다행이라고 우리 모두 동의했다. 하마터면 그곳으로 들어가서 축제를 즐기지도 못하고 시간만 버릴 뻔했기 때문이다.


3. 내장산 입구까지만 가보자


벽골제를 그렇게 지난 후, 재관은 갑자기 일정을 바꿔서 내장산에 가보자고 했다. 내장산까지 오기 힘든데, 다음에 언제 다시 이곳까지 오겠냐고 하면서. 재관은 말로만 들었던 내장산 공원 입구까지만이라도 가보고 싶어 했다. 10월 초지만 아직 단풍은 오지 않았다. 올해 한국에 단풍은 예년보다 늦게 오고 있으며, 날씨 탓에 수년만에 가장 예쁘지 않다는 뉴스 보도도 나오고 있었다. 재관은 내장산으로 들어가자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입구까지 드라이브라도 하면서, 나중에 ‘나도 내장산 앞까지는 가봤다’고 말할 수 있도록 눈요기만이라도 하자는 것이었다.


시간도 없고 단풍도 없는데 거기를 왜 가냐고 혁국은 투덜거리면서도 재관의 말을 들어주었다. 아예 안 될 것은 처음부터 확실하게 거부하지만, 웬만하면 들어주려는 그의 성품이 이런 데서도 나타난다. 우리는 어느새 내장산 공원 입구로 가고 있었다.


나는 어차피 약 기운 때문에 피곤하고 졸려서 뒤에서 졸고 있는 동안 자동차는 내장산 공원 입구로 들어섰다. 잠결에 얼핏 바깥을 보고 나는 생각했다.

여기가 내장산 입구라고?

주변의 숲과 나무가 온통 푸르기만 해서 나는 그저 흔하게 보는 산속에 있는 것 같았다. 그곳이 내장산 아니라 다른 산이라 해도 믿을 만큼 모두 비슷한 풍경이었다.


언젠가 사진에서 내장산 단풍을 보았던 것이 떠올랐다. 한국에 대한 나의 짧은 경험으로는 설악산과 속리산과 내장산의 단풍이 유명하다고 들었다. 단풍철이 되면 사람들이 줄지어 내장산으로 오기 때문에 자동차를 몰고 오면 이렇게 주차장으로 들어오기도 힘들다고 한다.


울긋불긋 아름다워서 눈이 시린 단풍!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 단풍!

그러나 현재 내 눈앞에 있는 내장산 공원은 그런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다시 꼬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내장산 공기를 쐬고 돌아간다고 생각하면서.


내장산 공원 입구를 겉핥기식으로 훑고 나서 친구들은 다시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에 관해 논의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여전히 비몽사몽 헤매고 있었다. 말 그대로 차에 실려가는 환자 신세라는 느낌이 들었다.



keyword
이전 06화정읍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