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전주 여행기 (3)
2017년에 현대중공업의 조선소가 폐쇄되고, 이듬해에는 미국 GM 군산 공장마저 철수한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은 군산은 일제강점기에는 대단히 큰 도시였다. 인근에 있는 옥구평야와 김제평야 등 곡창지대에서 수확된 쌀을 일제가 수탈해 가는 중요한 통로로 활용됐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수탈되는 미곡 분량이 한때는 인천을 능가하는 최대 수탈지다.
원래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은 부산, 원산, 인천을 개항시켰다. 이후 일본은 목포(1897), 진남포(1987)에 이어 군산(1899)을 추가로 개항시켰다. 일제 수탈의 영향으로 인해 군산은 오늘날 근대 일본식 건축물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도시가 되었으며, 일제 강점기 쌀 수탈의 아픔이 많이 남은 곳이다.
박정희 정권 들어 부산과 인천을 중심으로 경제개발이 이뤄지면서, 교통 인프라가 열악한 군산의 발전은 정체되었다. 그러나 세월은 다시 흘러서, 군산에는 각종 산업단지가 들어서고, 2000년대에는 새만금 개발사업과 함께 군산이 중요한 거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철길마을에서 나온 우리는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2011년 개관한 이 박물관은 3층 규모로, 해양생물 전시관과 독립운동가들의 역사를 비롯해서 일제강점기 당시 군대와 도시의 역사, 서민들의 일상생활사, 그리고 각종 수탈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안에 근대 문화 생활상을 보여 주는 설치물들이 많아서 그 시대 생활상을 짐작하게 한다.
군산세관, 구조선은행건물 등 근대 건축물 또한 볼 만한 근대문화유산이다. 갯벌이 드넓은 군산항으로 배들이 다니기 위해서 일제는 부잔교를 설치했다. 부잔교란, 밀물 때 바닷물 위로 떠오르고, 썰물 때 갯벌 위로 내려앉는 다리다. 1920년대 말부터 30년대 초까지 설치된 부잔교를 통해 3천 톤 급 기선 세 척이 동시에 군산항에 접안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때 부산에 이어 조선 2대 항구로서 역할을 했던 구 군산항은 이제 거의 황량한 뻘밭으로 변했다. 신항구를 설치한 후 항만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그곳을 나는 박물관 3층 난간에서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저 갯벌 위에서 무수한 조선 노동자들이 쌀가마를 나르고, 그 규모를 세었던 일본인 관리들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조선 민족이 조선 땅에서 지은 쌀이 무수하게 일본으로 새어 나가는 풍경을 그려 보기에 알맞은 장소였다.
오늘날 인구가 27만 명도 되지 않는 군산시의 도로에는 배롱나무들이 줄지어 섰다. 빨간 꽃들이 자자하게 여러 날 동안 번갈아 피고 져서 백일홍이라 부르는 나무다. 그 백일홍을 줄여 불러서 배롱이 되었다는데, 붉은 꽃들이 거리 양 쪽에 늘어선 것이 인상적이다.
한국에 와서 여행하다 보니, 요즘에는 전국적으로 배롱나무를 자주 본다. 내가 어릴 때 주로 보는 가로수는 플라타너스라고 부르는 양버즘 나무나 아카시아 나무였다. 일생을 대도시에서 살아온 나는 군산처럼 오래되고 아담한 도시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도로를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높은 건물이 없어서 좋고, 사람과 자동차가 많지 않아서 좋다. 옛 도시에서는 특유의 고즈넉한 풍경이 있고 오래된 냄새가 난다. 나는 오래되어서 색 바랜 그 정취가 좋다. 한적해 보이는 이 오래된 도시 역시 단정했고 조용하며 사람들은 순박하고 소박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