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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철길마을과 옛날 교복

군산-전주 여행기 (2)

by memory 최호인

군산.

이 도시는 내가 어릴 때 수없이 들었던 곳이다.

‘군산상고’ 때문이다.


1970년대에 고등학교 야구대회는 그야말로 전성기였고, 군산상고는 야구 명문 고등학교로 유명했다. 고등학교 야구대회는 TV에서 생중계할 만큼 국민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군산상고는 야구를 굉장히 잘해서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을 했던 적도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당시 흑백텔레비전을 보면서 군산상고를 응원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왠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군산이라는 도시 이름에 익숙해졌고 군산에 정이 갔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이후 프로야구 시대가 개막되었다. 칼러 TV 시대가 시작되면서 프로야구는 더욱 빠르게 국민적 스포츠로 성장한 반면, 고등학생들의 야구 경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사라졌다. 하여간 그 시절 그렇게 응원했던 군산상고가 있는 군산을 드디어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미리 사전답사를 해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이곳을 잘 알아서 그런지, 혁국은 아무 주저함도 없이 우리를 군산 시내 ‘철길마을’로 인도했다. 철길 마을은 ‘진포 사거리’에서 ‘연안 사거리’로 이어지는 약 400미터 구간이다. 이 철길은 일제강점기가 끝나가는 1944년 군산시 경암동에 준공하여 총연장 2.5km 거리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때 만들어진 철길과 침목이 아직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 철길로 2008년까지 하루 두 차례 화물차가 다녔다. 철길마을이 유명한 것은 철도 옆으로 집들이 너무 가깝게 붙어 있기 때문이다. 기차가 지나갈 때는 소리가 요란하고 집이 흔들려서 자다가도 깨지 않았을까. 기차가 ‘마을을 뚫고 가는’ 아슬아슬한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이곳은 사진작가들의 출사 지역으로 유명했었다.


yxHS0nGrf6ZP5b8qORyhB3iPz7JaG_CkVMAanfW7MCmjirLUUE1pO0SQsiEkZg0K5zWPu2Rkz57ui2m2I3VTxIwpItqmgx8X-jNzcHfg6VGVY6aURWZPXDe7XfWTpKsTHkm7_r-w_j58gP9ISF-JTw 이제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마을 전경. 주로 관광객만 오가는 곳으로 변했다.


그 유명세를 타고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원주민들은 점차 사라지고, 현재 그 마을은 많은 먹거리 가게들과 함께 ‘추억의 거리’로 탈바꿈했다. 그 거리에서 추억을 되살리는 대표적 상품은 7,80년대의 교복이다. 중년 남녀의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여서 말 그대로 ‘추억을 판매합니다.’이다.


우리가 갔던 날, 낮 최고 섭씨 35도를 웃돌고 있었으니, 그 후덥지근한 날의 체감온도는 그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추억의 교복을 입고 교모를 쓰고 옛 가방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이 든 성인들이 그런 교복을 입어보면서 옛 추억에 잠기는 이유는 쉽게 이해된다. 젊었던 시절이 그립고 지나간 시간이 아쉬워서다. 그런데 그들의 어린 자녀들도 앳된 얼굴로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귀여워 보이기도 하지만 다소 어색하기도 하다.


저 애들은 왜 교복을 입고 싶어 할까.


입을 만한 외출복이 별로 없었던 시절, 그나마 교복을 입고 다녀서 무엇을 입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던 시절, 다른 옷을 입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교복만 입고 다녀야 했던 시절, 고집스럽고 처절하게 교복을 입고 지냈던 부모 세대의 경험을 그들은 알 길이 없을 것이다.


저들에게 그 교복은 그저 예쁜 한복을 입어 보는 것처럼 신기한 옷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조금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영혼 없는 예술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다. 교복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그 애들은 모르기 때문이다.


SlJhiOUD62r3Dkv-xy3ZYcPhhcVseenQ-YES25Eo0Ie41nKMqzDjORh3tk_IlTlyQjAEGOzcHQSQyMNgnocdFi_KYNQysvm_WsHIAAZa4LHRpy0VyzLsM1dASKp9gP30bA7Pknd5UUt-S_NZxl3nRQ 관광객들은 이렇게 옛날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다. 참 멋진 포즈다.


빡빡머리와 다름없는 이부머리에 언제나 검은 모자를 쓰고 다녀야 했던 우리는 언제나 동복 아니면 하복만 입고 다녔다. 한 해 내내 단 두 벌이 우리의 이름과 신분을 드러내는 공식 외출복이었다. 이부머리란, 이발소에서 바리캉에 2밀리미터 덧날을 끼워 자른 머리를 말한다. 이부머리는 바리캉을 머리에 대고 쭈욱 밀면 되므로, 빠르게 하자면 머리 깎는 데 3분도 안 걸릴 것이다.


가끔 교복보다 조금 더 편한 교련복을 입기도 했지만, 그것은 교련이 있는 날만 허용된 것이었다. 교련이란 군사 훈련이고, 돌이켜 보면, 결국 우리는 예비 학도병과 비슷한 신분이었다. 학교에서 제식훈련하고 소총 훈련을 받았고, 아침저녁으로 태극기 앞에 서서 충성을 맹세하고, 그 긴 국민교육헌장을 줄줄이 외우면서 살았으니 말이다.


남학생들의 머리를 빡빡이로 만들고, 여름이든 겨울이든 여학생들은 언제나 치마만 입고 다니도록 했던 것은 누구의 발상일까.


불행하게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교복에 대한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물론 이제 교복은 군대문화의 산물로만 이해되지 않는다. 오늘날 교복은 학생들에게는 하나의 값비싼 패션이고, 교육계에는 골치 아픈 문제로 등장했다.


오늘날 교복이 왜 그렇게 비싸게 거래되는지, 또 여학생의 교복은 왜 그렇게 짧은 치마에, 상의마저 꽉 끼도록 만드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매우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의 교육감들이 선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복을 둘러싼 이 같은 횡포와 성차별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민주화가 진행된 사회에서 청소년과 학부모를 상대로 교복을 둘러싼 횡포와 억압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참으로 의아스럽다.


자기 아파트 단지 옆에 청년 전용 월세 아파트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결사 반대하고, 지은 지 30년도 안 된 아파트 단지의 재개발 이익에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이 한국사회에 그리도 많은데, 왜 교복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을까. 그저 교복이 비싸다는 말 이외에 할 말이 그렇게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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