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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는 길

고창-정읍 여행기 (10)

by memory 최호인

시간이 너무 늦기 전에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혁국의 집까지 가는 시간은 고속도로에서 차만 안 막히면 세 시간 정도일지 모르지만, 일요일 저녁이라 필시 고속도로 정체가 심할 듯했다. 올라가다가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든, 부천에 가서 먹든 우리는 일단 삼례에서 서둘러 출발해야 했다.


차를 탄 후에 재관은 줄곧 혁국 옆에 앉아서 카카오맵과 다른 지도를 비교해 가면서 줄기차게 혁국과 가는 방향을 의논하고 인도해 주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기 위함이었다.


재관은 별로 피곤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참으로 놀라운 활력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정열적으로 활기 있게, 마치 오랫동안 막혔던 뭔가가 터진 듯 지속적으로, 혁국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이끌었다. 예전에도 그가 이렇게 끊임없이 말이 많았었는지 헷갈린다. 이렇든 저렇든 적어도 지금처럼 혁국이 이틀 내내 운전하는 동안 또 종필과 내가 별로 말이 없을 때 그가 끊임없이 말을 하고 길을 안내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전북을 벗어나 천안 어름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갔지만, 도로는 그때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사위는 이미 어두워졌고, 반대 차선에서 날아오는 눈부신 전조등과 우리 전방에 있는 차들이 브레이크를 밟아서 나타나는 붉은 후방등만 우리의 눈을 괴롭혔다. 종필과 나는 뒤에서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저녁을 어디서 먹었던가.

고속도로의 어느 휴게소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휴게소에서 우리는 키오스크를 통해 음식을 주문하고 식탁에 마주 앉았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식사가 가볍게 끝났다. 우리는 서둘러 자동차로 돌아갔으며 밤길을 달렸다. 헤어질 때가 가까워오니 마음이 허전하면서도 부산했다.


마침내 부천에 도착한 시각은 밤 10시 무렵.

자동차가 혁국이 사는 아파트 단지 내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아주 간단히 악수만 하고 헤어졌다. 헤어질 때는 어딘가 서글픈 마음이 있겠지만 중년의 사내들은 그런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떠나가는 우리를 보고 혁국은 언제나 그런 것처럼 짧고 퉁명스럽게 “잘 가라”라고 말하면서 떠나는 친구들에게 그리 길지 않은 석별의 눈길을 주었다. 주어는 생략한 채, "고생했어.”라고 말하면서 종필은 자기 차로 갔고, 재관은 이미 혁국과 상의한 대로 친절하게 나를 가까운 지하철역 입구까지 데려다주었다.


재관은 낯선 곳 낯선 지하철역 앞에 자동차를 세웠다. 서울에서는 지하철을 타기만 하면 어디론가 연결되어 숙소까지 갈 수 있으니 다행이다. 재관과 작별 후 나는 땅 속 깊은 곳으로 긴 계단을 내려갔다. 역내에는 사람이 거의 아무도 없었다.


한국에 올 때마다 나는 친구들과 여행하기를 바랐다. 한국의 친구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대학 시절에 헤어졌을 때의 감정이 사뭇 오래도록 남아 있다. 한국을 떠나던 그때의 감정 말이다.


그런 감정 상황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많은 한국인들에게 대체로 비슷하다. 이민 후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한국을 떠날 때 가지고 있었던 감정을 그대로 유지하는 이민자들이 많다. 종종 한국을 방문하면서 달라진 한국과 한국인들의 풍경에 그런 오래된 감정이 불현듯 깨질 때도 있지만, 그러기 전까지는 떠날 때의 감정에 머물러 있는 것이 보통이다.


나도 안다.

내가 떠나 있는 동안 한국은 엄청나게 변했다. 한국인들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종종 미국에서 온 사람과 한국에 있는 사람 사이에 깊은 감정의 괴리를 느끼게 한다. 그것은 슬프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친구들과 여행하는 것은, 한국으로 온 여행객인 나에게는 매우 간단하게 생각되는 바람이지만,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어찌 생각하면 마음만 먹으면 될 수 있는 계획이지만, 실제로는 이뤄지기가 결코 쉽지 않다. 각자 사는 곳도 멀고 자기의 일상으로도 늘 바쁘다. 무엇보다 그들의 감정은 나와 같지 않다. 헤어져 지낸 기간이 길어서 그렇겠지만, 만나봤자 함께 나눌 공통의 대화 주제를 찾기도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한국에 살고 있는 어떤 친구는 몇 해만에 만난 나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여기 있는 우리끼리도 거의 만나는 일이 없다.”

“여기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것보다 너를 더 자주 보는 것 같다.”


그런 말을 하는 이유나 배경을 이해한다. 한국에 있는 동기 친구들끼리도 자주 보지 않고 지내는데, 기꺼이 시간을 내어 나를 만나러 나온 친구가 나는 고맙고 반갑다.


논어의 첫머리에 적힌 대로, 멀리서 일부러 찾아온 친구를 만나면 즐겁고 반가운 것(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이 기본이거늘, 별소리를 다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일은 과거의 일이 되었다. 멀리서 친구가 찾아온다고 해서 모두 같은 게 아니라고 할 것이다. 친구도 친구 나름이니까. (어떤 이는 논어 첫 장에 나오는 '친구(朋)'를 '뜻을 같이 하는 사람', 즉 '동지'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친구'라는 말은 오늘날 너무 깊이 없고 두루뭉술하게 사용되기 때문이라면서.)


하여간 나는 떨어지는 낙엽을 아쉬워하는 것처럼, 친구들의 만남도 아쉽게 느낀다. 이제 우리 앞에 새털처럼 많은 날이 있다고 말할 형편이 아니다. 바란다고 해서 모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아야만 가능하다.


만나고 싶다 해서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나는 그저 또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이제 몇 번이나 서로 얼굴 보고 만날 수 있을까.



<에필로그>


고창-정읍 여행 후, 나는 여전히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곧 서울을 떠나야 했다. 서울에 도착해서 살기 시작한 고시텔의 한 달 계약이 끝나는 시점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한 주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서둘러 결정해야 했다. 고시텔 방에 더 있을 수 없었고, 서울에서 다른 숙소를 구하는 것은 망설여졌다. 당초 계획한 대로 부산에서 한 달 살기를 하려면 곧바로 서울을 떠나야 했다. 서울에서 친구들을 더 만나고 싶기도 하고 내 몸도 성치 않은 듯해서 고심했지만, 나는 결국 서울을 떠나기로 했다. 서둘러 부산에 원룸을 구하고, 10월 14일 낮에 나는 부산행 열차를 탔다.


고창-정읍 여행은 겨우 1박 2일 여행이었지만, 그나마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적었다.

나는 여행 전부터 이 여행기를 쓸 계획을 하지 않았다. 여행 전후에 있었던 탈장수술과 숙소 변경 등 여러 문제들로 인해 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복잡한 상황이었다. 그 바람에 여행기를 쓸 계획도, 여행에 앞서 여행지에 관한 사전지식도 전혀 없이 친구들을 따라나섰다.


여행을 가서도 나는 너무나 피곤해서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디로 다니고 있는지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오죽하면, 말이 별로 없는 종필이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네가 무척 힘들었나 보다. 말도 별로 없고.”

속 깊고 말이 많지 않은 종필의 말대로다. 정말 힘들긴 했으니까.


지나간 일이지만 아쉽고 미안하다.

그래도 친절하고 이해심 많은 친구들 덕에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혁국의 세부적이고 실용적인 계획, 재관의 즐거운 입담과 성실한 운전길 안내, 종필의 묵묵하고 성실한 협조와 지원 등으로 우리는 매우 즐겁고 효율적인 여행을 한 셈이며, 또 하나의 추억을 남기게 됐다.


내가 아파서 힘들어하긴 했지만, 우리는 아무 갈등이나 어려움 없이 이틀간 여행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나를 제외한 친구들 덕택이다. 이 글을 통해 그들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이 글은 그들에게 우정을 전하는 나의 마음이기도 하고, 우리들에게 남을 추억을 조금 더 세세하게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렇게 고창과 정읍 여행에 관한 글을 쓸 것을 미리 계획했다면, 여행 중에 나는 더 많은 사진을 찍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지금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을 미리 알지 못했다. (그나마 우리 가운데 내가 사진을 가장 많이 찍은 듯하다.)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참 많다.

지나고 보니 그것도 아쉽다.


그래도 가능하면 글마다 사진을 첨부하여 이해를 돕고자 했다.

이 글이 여행을 함께 했던 우리에게, 또 다른 친구들에게 즐거운 추억의 한 장면으로 남기를 바란다.


(알림 - 매거진 제목을 '전라북도를 찾아서'라고 정한 것은 이 여행기에 이어 5년 전에 갔던 '군산-전주' 여행기를 올리고자 계획했기 때문이다. 부족함이 많은 내 글을 자주 찾아와서 읽어주는 독자들에게 이를 알리고, 아울러 이 기회에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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