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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가는 길

군산-전주 여행기 (1)

by memory 최호인

<프롤로그>


2018년 여름 나는 한 달 여정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5년 만의 한국 방문이었다. 주로 서울에 머물렀지만 이때 두 차례에 걸쳐 대학 동기 친구들과 1박 2일로 지방 여행을 다녀왔다. 처음에는 안동과 삼척으로, 두 번째는 군산과 전주로 다녀왔다. 두 번 모두 기억에 남을 좋은 여행이었다.


여행을 갈 때만 해도 나는 미처 후기를 쓸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 달 가까운 한국방문 여정이 모두 끝나고 뉴욕으로 돌아온 나는 시차적응과 여행 후유증으로 한동안 시달린 후에 비로소 함께 여행했던 친구들과 나의 추억을 위해서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나는 먼저 안동과 삼척 여행기를 아주 짧게 써서 친구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올렸다. 친구들은 그간 이따금 여럿이 모여서 여행을 했지만 공개적으로 여행기를 남기는 일은 없었다. 처음으로 공개된 나의 여행기에 대한 반응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나는 이번에는 군산-전주 여행기를 조금 더 세부적으로 기록하기로 했다.


대학 친구들과 여행하는 것은 재학 시절 이후 수십 년 만의 일이다. 20대 초에 미국으로 간 나는 이후 내내 미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한국 친구들과 거의 만날 수 없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서로 친한 사이끼리만 간간이 만났겠지만, 모두 각자 자신의 생애를 살기에 바빴던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꽤 오랫동안 많은 친구들은 교류가 끊어진 채 지냈다.


그러나 오십 대 들어 약간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친구들은 비로소 서로 연락을 취하고 단체채팅방도 개설됐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연락이 잘 되지 않던 친구들도 연락이 가능해졌다. 나이 들어서도 학창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금세 다시 친해진다. 어릴 적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서로 말도 놓고 농담도 하면서 편하게 만날 수 있게 된다.


대학 시절 비교적 친했던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여행까지 하게 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친하다 해도 함께 여행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지만 여러 친구들의 노력으로 지방 여행도 가능해졌다. 이후로 나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친구들에게 함께 여행하기를 간청한다. 이런 일도 처음이 어렵지, 한 번 물꼬를 터놓으면 그다음부터는 조금 더 쉬워진다. 또는 그러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편이지만, 내 친구들은 사치나 허영과는 거리가 먼 실속형 여행 파다. 맨날 명품 타령하는 사람을 속 빈 속물로 취급하고 고급 리조트나 화려한 엔터테인먼트 시설 등에도 별 관심이 없다. 서울과 뉴욕 등 대도시에서 수십 년간 살았고 나이도 지긋해진 상황에서 세련된 하이테크 시설과 고층 건물 또는 화려한 유흥시설에도 관심이 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개인적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함께 대화하고 논의하는 장소에서 우리는 골프라든가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등에 관해서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런 주제는 종종 나이 든 사람들의 대화 테이블에 올라가는 단골 메뉴이지만 우리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약간 고리타분하지만, 우리는 함께 여행을 갈 때 아직까지는 주로 한국의 역사와 관련된 유적지를 위주로 다닌다. 아름다운 자연도 우리의 관심을 끌지만 특히 오래된 사찰은 우리가 주로 방문하는 대상이다. 유럽을 방문하는 여행객이 오래된 교회를 찾아가는 것처럼 우리는 한국의 오래된 고찰을 찾아다닌다. 거기에 역사와 문화와 건축과 자연이 함께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것에 가치를 두게 된 것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중요한 특징이다. 오래된 것에서 가치를 찾는 것은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이 역사와 문화와 문명을 발전시켜 왔음을 보여준다. 이 세계에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작품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역사와 문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오래된 것에 가치를 둘 까닭이 없다. 인간은 자신들이 만든 오래된 것이라면, 요강이나 숟가락까지 귀중하게 생각하고, 거래를 할 때도 오래된 것일수록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사람도 그렇다. 오래된 친구가 좋다.

그렇게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 했던 여행 후에 기록한 내용을 아래 소개한다.



<군산 가는 길>


이번 여행은 당초 여섯 명이 가기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수경과 재관이 개인 사정상 빠지면서 네 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로 인해 여행의 움직임은 조금 더 단출했고, 기동성은 높아졌다. 여성 참가자가 없음으로 인해 부드러움은 줄어들고, 과묵하고 거친 측면은 늘어났다. 그래도 자동차 안에서도 걷는 동안에도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다. 여행 경로는 군산에서 새만금 도로를 거쳐 변산반도에 있는 국립공원을 보고 전주를 방문한 후 돌아오는 것이었다.


2018년 8월 11일 아침 7시 30분.

무더움이 예상되는 여름날 아침, 우리는 동헌 버스환승정류장에 모였다. 6인승 차를 성종이 몰고 왔는데, 아홉 명까지 탈 수 있는 차라고 한다. 우리는 곧바로 고속도로를 타고 군산으로 향했다.


이런 차를 미국에서는 ‘미니밴(minivan)’이라고 부른다. ‘밴(van)’은 ‘밴트럭(vantruck)’을 말한다. 밴트럭은 주로 짐을 싣고 다니는 차량으로 사용되지만, 미니밴은 사람을 위주로 태우는 차량으로 바뀐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에서는 차량이 다양화하면서 이제는 소형 차량보다 중대형 차량이 유행이다.


주차가 힘든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사람이 타고 다니기에도 좋고 짐을 싣고 다니기에도 편한 픽업트럭이 많이 사용되는 편이다. 픽업트럭은 앞에는 사람이 타고 뒤에는 짐을 싣도록 개방된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량 1~3위는 모두 '픽업트럭'인데, 차가 커서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는 흔하지 않다.)


친구들과 만나서 여행을 하려니 나는 약간 흥분되었다. 바로 한 주 전에 나는 다른 친구 그룹과 안동과 삼척 등지를 여행했다. 군산~전주 여행은 사실 더 흥미진진하다. 나로서는 전라북도 여행이 처음이라 더욱 그렇다.


안동과 삼척으로 가는 길은 산들이 도로에 바투 붙어서 즐비했지만, 군산으로 가는 길에는 산들이 도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것은 산골 지역으로 가는 것과 평야로 가는 것의 차이였다. 도로 곁에는 들판이 펼쳐졌고 논밭들과 공장과 회사들이 많았다. 좁은 한국에서 그나마 이곳이 가장 널찍하게 또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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