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전주 여행기 (4)
초원사진관.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나온 우리는 점심을 먹기 전에 초원사진관으로 갔다.
필경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보았을 것이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그 영화를 찍었던 장소다. 한석규와 심은하가 주연했던 그 영화는 워낙에 주인공들이 유명하고 제목부터 눈길을 끌었으며 갖은 서정성까지 동원되어 우리의 심금을 울렸던 영화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
한국 사람들은 주인공이 불치병으로 죽거나 애절하고 구슬픈 사랑 이야기에 열광한다. 서로 신분이 다르거나 미혼자가 기혼자를 사랑하는 데서 생기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아니라, 연인이 죽으면서 또는 죽게 되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말이다. 우리의 사랑 이야기는 왜 그렇게 행복하거나 즐거운 코미디보다는 죽거나 이별하는 비극으로 발전했을까.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한석규는 밝혀지지 않은 병명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초원 사진관’의 사진사이고, 심은하는 주차 단속 요원이다. 사진을 현상하려고 사진관에 온 심은하가 한석규를 만나고 그들은 점차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한석규가 아파서 입원하면서 사진관이 닫히고 그것을 모르는 심은하는 한석규를 그리워하면서도 나타나지 않는 그를 미워하고, 그에게 계속 편지를 써서 아무도 없는 사진관 문틈으로 편지를 밀어 넣는다. 그러나 읽히지 않고 쌓이는 편지들...
나중에 기력을 회복한 한석규는 초원사진관으로 돌아와서 심은하가 돌을 던져서 깨진 유리창과 편지들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는 심은하에게 연락하지 않고 죽음에 이른다. 영화가 끝날 무렵 심은하는 자신의 사진이 사진관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잔잔한 미소를 짓는다. 이미 사라진 희미한 옛사랑의 여운을 그리워하듯.
이 영화의 감독 허진호는 당초 ‘즐거운 편지’라는 타이틀을 거론했지만, 영화 ‘편지’가 먼저 개봉되자 타이틀을 바꾸었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것을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왜 8월의 크리스마스일까.
그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두 주인공이 8월에 처음 만났고 사랑이 확인되는 순간이 크리스마스 무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인상적인 타이틀이 탄생했다.
초원사진관에는 영화 사진들이 잔뜩 걸려 있었다. 사진관을 방문하여 그것들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추억에 잠긴다. 오래된 사진들을 보는 것은 얼마나 마음을 애잔하게 하는가. 누구나 자신의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과거를 여러 스틸 장면들로 엮은 사진들을 본다면 그 시절, 젊었던 한때를 잊지 못할 것이다. 나도 싱그러웠던 시절이 떠올랐고 표현하기 어려운 그리움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현실은 이렇다.
칙칙한 우리 남자 네 명은 마침 그 영화 제목과 같은 8월에, 극한의 더위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초원사진관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남들처럼 우리도 사진관 안에 있는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면서. 우리는 거기서 벽에 걸린 낡은 사진들을 보면서 그저 땀만 흘렸을 뿐, 아무도 이루어질 수 없었던 옛사랑을 떠올리지 않았다. 한증막 같은 사진관 바깥으로 나오면서 한 친구가 말했다.
"이 사진들 보니까, 옛사랑 생각나지?"
"야, 너무 더워서 옛사랑이 왔다가도 말라죽겠다."
그나마 에어컨이 나와서 시원했던 초원사진관에서 햇빛이 쨍쨍한 바깥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이었다. 나는 군산에 무슨 음식이 유명하냐고 혁국에게 물었다.
군산에 들어서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군산을 안내하는 혁국은 알고 보니 초등학교 시절 한때 이곳에 살았었다고 한다. 그는 군산에서 소고기뭇국이 유명하다고 대답하면서 초원사진관 맞은편 식당을 가리켰다. 그는 이미 이곳으로 올 때부터 그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가 들어가고 싶었던 맛집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럴 때 우리는 길게 고민하지 않는다. 우리는 맛집 앞에서 긴 줄에 서서 기다렸다가 먹는 사람들이 아니다. 맛집 옆에는 으레 맛집이 있기 마련이다. 근처에도 분명히 비슷한 맛을 내는 식당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아무 망설임 없이 곧바로 돌아서서 어느 골목길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나 우리가 잽싸게 선택한 길에서 식당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낯선 골목 안 어디엔가 있을 소고기뭇국 식당을 찾아서 우리는 뙤약볕 밑을 무작정 걸어갔다. 무더위에 헉헉거리면서 끝없이 이어진 듯한 골목으로 들어갔지만 그곳은 거의 주택가였고 식당은 보이지 않았다. 더워서 슬슬 화가 날 때쯤 우리는 마침내 '응답하라 1988'에 나올 만한 소박한 동네 골목 안에서 허름한 식당을 발견했다. 배가 고프고 너무 더워서 더 이상 '좋은' 식당을 찾아다니는 것이 힘든 상황이었다.
그때 누군가 이렇게 말했고 이어서 모두 한 마디씩 했다.
“이런 집이 맛있는 집이야”
"그건 그래. 일단 간판이 잘 안 보이잖아."
"시장이 최고 반찬이지."
"너무 덥다. 빨리 들어가자. 에어컨 바람이라도 쐬어야지."
우리는 뙤약볕을 피해 서둘러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손님이 몰릴 만한 점심시간인데 손님이라곤 다른 남성 두 명만 있는 그 집에서 주인아저씨가 반갑게 우리를 맞았다. 에어컨도 없는 식당 벽에서 두 대의 선풍기가 소리를 내면서 돌고 있었다. 그나마 선풍기 바람이 오는 테이블을 골라서 우리 넷은 마주 앉았다. 테이블이 작아서 서로 너무 붙어 앉은 듯했다.
"소고기뭇국 넷이요."
메뉴를 쳐다보고 고를 것도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혁국은 아무 망설임 없이 소고기뭇국 네 그릇을 주문했다. 허기져서 허겁지겁 먹은 음식은 다행히 맛이 좋았다. 원래 음식 맛이 좋아서 그런지, 배가 너무 고파서 그런지는 알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