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라는 섬
장애도.
뱃속에서부터 아이가 아프단 걸 알았다.
어떤 마음에서였을까. 알량한 정의감? 아니면 불행은 나를 피해간다는 자만심?
어쨌든, 24주에 뱃속에서 자기 존재를 뽐내는 아이를, 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낳았다.
돌봐야 할 두 아이들이 있었고 아이는 조금 더디게 자랐지만 또 근거없는 자만심이 내게 속삭였다.
"잘 클거라고."
지금 아이는 한국 나이로 5세. 만 4세가 지났다.
여전히 잘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한다.
장애아이 하나가 있음으로 인해,
나는 섬에 갇혔다.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자,
또 집에만 갇혀있는 내가 뭐라도 하면 살 것 같아서
언어치료와 행동치료 공부를 시작했다.
나 혼자 공부할 때는 문제가 전혀 없었다.
애들 재우고 하면 되니까. 그냥 내가 잠 좀 덜 자면 되니까.
국시를 치려면 실습을 해야했다. 남편이 두 달 휴직해준 덕에 걱정없이 실습하러 다녔다.
하지만 아이의 발달치료비는 일반아동 영어유치원 비웃는 가격이다. 조기교실을 끝내고 부담이 줄었어도 셋째 아이한테만 달에 200만원 가까이 나간다. 또한 빚에 대한 이자도 일 년에 사회 초년생 연봉만큼 나간다.
더이상 남편이 휴직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콩나물과 두부만 먹일수도 없으니까.
장애아돌보미는 작년부터 구해지지않고, 아이돌보미는 장애아이가 있다고 해서일까. 아무리 매칭을 시도해도 매칭되지 않는다.
나는 섬에 갇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나의 죄는 대한민국에서 장애아이를 낳은 것이다.
아이를 네 명이나 낳았음에도 장애아이 하나 낳아서 경제적 활동도, 하루 2시간의 실습이란 시간도 내겐 주어지지 않는다.
내가 언제 뉴스에 나올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