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거기 왔는가 - 김경근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한조각

by 사노라면

자네 거기 왔는가

보따리 내려놓고
지팡이 던져두고
이리 와 보세나
가시 박힌 가슴
이리 내어 보세나
물집 잡힌 손 끝

세상 바람에
무엇을 잡았나
세상 파도에
무엇을 보았나
그리 쥐어 한 줌인 것을
그리 뛰어 이리 올 것을

지천에 널린 꽃은
그리 지고와 묻은 한숨들
지천에 널린 풀은
그리 이고와 뿌린 미련들

지는 저녁노을 뒤로
지친 다리 끌고
처진 어깨 밀고
자네
거기
왔는가

자네 거기 왔는가 - 김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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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온 동네의 산책길을 돌아봤습니다. 차를 타고 지날 땐 보지 못했던, 공릉천이며, 풀 우거진 산책길이 정겹습니다. 마침 날도 흐릿하여 산책하기에 딱 좋은 시간입니다.

산책길을 돌다 커다란 고목을 마주합니다. 꽤 오랜 세월을 견디었음직한 모습입니다. 여느 유적지의 고목처럼 수령을 나타내는 팻말 하나 없지만, 그저 그 모습만으로도 수백의 세월이 느껴집니다.

멍하니 나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나무가 말을 거는 듯합니다.
'자네 거기 왔는가.
이제야 왔는가
애썼네, 수고했네'
나무는 그저 조용한 몸짓으로 내려다봅니다. 나는 그저 나무를 올려보기만 합니다. 벅찬 마음이 가슴 저 밑에서 올라와 코 끝을 뻐근하게 합니다. 나무는 아무 말없이 그저 가지만 천천히 흔들어줍니다.
다 안다는 듯이,
다 괜찮다는 듯이.

산책길의 나무에게 우연한 위로를 받는 조용한 하루,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로운 하루를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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