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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Jul 01. 2021

청포도 - 이육사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청포도 - 이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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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 토박이입니다.

그런 제 기억 속에서 고향엔, 실상 칠월이 되어도 청포도가 열리는 걸 볼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칠월이 되면, 그렇게 습관처럼 자연스레 청포도로 시작하게 됩니다.

칠월의 첫날,

나도 모르게 하이얀 모시 수건을 깔듯 화선지를 펼치고, 청포를 입고 찾아오는 손님을 그리듯  붓은 청포도 알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제게 칠월은 청포도의 계절인가 봅니다

폭염 소식도 있고,

장마 소식도 있지만,

그렇게 칠월은 손님처럼 우리에게 찾아오고 있나 봅니다.


이제는 도시화되어버린 우리의 고향이지만,

뜨거운 칠월의 햇빛 아래 우리 마음 안에는,

오늘은 살아가는 지금의 이야기들이

다시금 전설이 되어,

알알이 들어와 박혀,

어느 담장 아래에서,

어느 그늘 밑에서,

세월을 담고, 사랑을 담고,

피곤한 몸을 추스르며 걸터앉아,

알알이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을 겁니다.


뜨거운 칠월의 첫날,

청포도 한송이 그려 여러분과 나눠보면서,

여러분 마음속에서 익어가는, 우리의 세월 속에 스며드는 싱그런 청포도를 응원해 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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