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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Jul 05. 2021

해당화 - 한용운

사노라면 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시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려워합니다.


철 모르는 아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듣고도 못 들은 체하였더니,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 그려.

시름없이 꽃을 주워서 입에 대이고 '너는 언제 피었니' 하고 물었습니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해당화 - 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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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비가 멈춘 하늘로 새들이 날아다닙니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뺨을 끈적하게 스치는 오후입니다.

흠뻑 내린 비 덕분에 옥상에 화분마다 꽃들은 열심히 꽃대를 올려대고, 대나무 죽순은 머리를 힘차게 밀어 올립니다.

잠깐 돌아보면 어느새 피어난 꽃송이가, 어느새 익어버린 토마토가 수줍은 얼굴을 내밉니다

'너는 언제 피었니' 꽃에게 말을 걸어 보다가 한용운 님의 해당화란 시가 생각납니다.


봄이 지난 지는 한참 되었지만,

해당화 피고 진 지 한참이지만,

한용운 님의 해당화 한 송이 붓에 묻혀 봅니다.


시 속에선 온다던 봄에 오지 못한  님을 그리며 애석한 마음으로 꽃송이를 줍지만, 지금은 반가운 마음으로 꽃을 바라봅니다.

눈물에 비추어 둘도 되고 셋도 되던 꽃들은, 이 빗속에서도 둘로 셋으로 피어납니다.


그 봄에 당신은 보지 못했지만,

그 여름에 당신은 오지 못했지만,

저 가을에 떠났던 그리움이지만

하얀 겨울에 얼어붙을 가슴이지만,

그래도 다시 꽃 피울 봄이 오기를

다시 열매 맺을 여름이 오기를,

그렇게 우리는 기다리겠지요

그렇게 말없이 꽃잎 하나 주워보겠지요.


어느 젖은 하늘 아래,

그리운 눈물에 해당화 두 송이 비추고 있을, 외로운 가슴들을 위로합니다.


세상 모든 그리움의 애틋함을 보듬어 봅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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