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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Jul 12. 2021

금화터널을 지나며 - 강형철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매연이 눌어붙은

타일이 새까맣다

너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

그 곁에 보고 싶다 썼고

나는 정차된 좌석 창 너머로

네 눈빛을 보고 있다.

손가락이 까매질수록

환해지던 너의 마음

사랑은 숯검댕일 때야 환해지는가

스쳐 나온 교회 앞

죽은 나무 몸통을 넘어 분수처럼 펼쳐지는

능소화

환한 자리


금화터널을 지나며 - 강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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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 토박이입니다.

독립문 근처에서 나고 자라, 결혼하기 전까지 삼십여 년을 서울 서대문에서 자랐습니다.

그러기에 서대문 , 광화문, 종로, 안국동 같은 시내 인근은 어린 시절 매일 걸어 다니던 고향 같은 동네입니다.


강형철 시인의 '금화터널을 지나며'라는 시가 반가운 이유도 바로 어릴 때 살던 집 금화산 뒤편이 금화터널이기 때문이지요.

시를 통해 고향의 한 모퉁이를 떠 올림도 반가운 일입니다.


실상은 금화터널보다는 건너편 사직터널을 더 자주 걸어 다녔습니다.

안국동에 위치한 중학교를 걸어 다닐 때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 터널을 지나다녔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새까만 타일에 보고 싶다 낙서하는 이의 눈빛이 정겹습니다.

그 숱한 이름들이 떠 오릅니다.

터널 안 타일은, 그 당시 지나다니던 이들의 연서 고백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전하지 못한 짝사랑의 사연들이 타일마다 하얗게, 능소화처럼 핏빛 꽃 무더기로 피어났을 겁니다.


요즘도 가끔 본가에 들르러 갈 때 터널을 지나가지만,  지금은 걸어 다니는 발길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터널 안 어느 구석에는, 어느 시절의 보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스며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가만히 내 손가락 끝을 내려다봅니다.

내 손가락 끝 어딘가에, 여전히 그날의 터널 안 검은 먼지가 묻어 있을까 찾아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 고향은 어디신지요.

후텁지근한 여름날이지만, 오늘 하루

잠시 추억을 돌아보는 시간들 만들어보시는 건 어떨지요.


세상 모든 이들의 어린 시절을 응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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