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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Aug 17. 2018

누가 디케의 눈을 가렸는가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묻혀 캘리한조각

뜨거웠던 밤공기에서 제법 새벽엔 서늘함까지 느낄수있는 숨통이 트여집니다.

계절은 그렇게 순리대로 흘러가는가 반가운 아침을 맞이하는 하루입니다


그렇게 숨통의 실마리를 잡으며 오늘은 정의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세상의 정의와 법을 다루는 곳에는 상징으로 정의의 여신 디케가 서 있곤 합니다

오래전에 EBS 지식채널에서 정의의 여신 디케에 대한 이야기를 본적이 있지요.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디케는 한손엔 저울을 들어 치우치는 않는 옳고 그름의 무게를 재고,

한 손엔 누구라도 심판하는 칼 한자루를 들고 소리없이 불의를 추적 해 엄격히 처벌을 하지요

그리고 디케의 두 눈은 불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녀 세상의 정의를 수호했다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정의의 여신상 디케는 두 눈이 가려진 모습으로 동상으로 서 있는 걸 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 1494년 바보배라는 책을 쓴 제바스티안 브란트는,

정의의 여신 디케는 세계속의 100명의 바보 중 한 명에게 두 눈이 가려지게 된다 합니다

그 이유는, 크고 작은 소송이 끊기지 않았던 당시의 사람들은, 그 소송에서 이기고자 하던 사람들은, 눈먼 정의를 바라는 사람들에 의해 정의의 여신 디케가 사건을 제대로 보지 않길, 진실을 보지 않길 원하여 눈가리개를 씌웠다합니다

그리하여 저울이 어디로 기울었는지 보지 못한 채 휘둘러지는 칼을 가진 , 아무것도 보지못하는 눈 가리개를 쓴 정의의 여신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지요.


그렇게 수백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디케의 눈은 가려져 있습니다.

수백년이 흐른 지금의 디케는 여전히 가려진 눈에 익숙해진걸까요

그가 보지 못하는 건 진실 뿐일까요

적어도 디케의 눈이 가리워진건,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함이 아니라,

권력과 편견에서 공평할 수 있는,

그런 ‘정의’를 원하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제 디케의 눈 가리개를 걷어내어,

디케의 눈으로 권력도 보고, 편견도 보면서,

그리하여 그가 손에 쥔 추를 평형을 보아,

정의를, 진실을 판단하게 되길 기원해봅니다.

세상의 정의가 권력과 편견의 뒤에서 주춤거리는듯한 요즘.

정의의 여신 디케의 깨어남을 상상해 봅니다

세상 모든곳에 정의와 평화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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