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묻혀 캘리한조각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시골의 어느 공원 묘지에 묻혔다
이듬해, 나는 방학을 이용해서 그 근처의 친척집엘 갔다
우리가 탄 차가 할머니가 잠들어 계시는
묘지 입구를 지나갈 때였다
할아버지와 나는 뒷좌석에 함께 앉아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우리가 아무도 안 보는 줄 아셨는지
창문에 얼굴을 대시고 우리들 눈에 띄지 않게
가만히 손을 흔드셨다
그 때 나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처음 깨달았다
<참 사랑의 모습 / 이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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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정하님의 ‘참사랑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작은 동화 같은 풍경이 그려지는 글입니다.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사랑을 하나 봅니다.
올 여름 같은 뜨거운 사랑,
한 겨울 이불 옆 화롯불 같은 잔잔한 사랑
폭풍 속 번개 같은 강렬한 순간의 사랑
그 어느 사랑하나 중요하지 않고, 아프지 않은 사랑이 있을까요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려지지 않는,
누구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사랑의 마음일겁니다
그런 세상의 수많은 사랑중에,
어느 사랑 하나 참사랑 아닌게 없겠지만,
세월을 함께한 노부부의 사랑은
세월이 빚고, 시간에 익고, 같이 한 마음이 녹아 얹어진 진득한 참사랑 중 하나일겁니다,
언뜻 이 글을 읽으며, 김광석씨의 잔잔한 목소리로 듣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라는 노래도 떠오릅니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 나를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매번 부를 때 마다, 들을 때 마다, 글로 옮길 때 마다, 알 듯 모를 듯 그 애틋함에 먹먹한 마음이 드는 노래 가사였는데,
지금 보니 이정하님의 이 ‘참사랑의 모습’이란 글과 절묘하게 어울립니다.
마치 노래속의 그 노부부의 그 다음 장면처럼 보입니다.
뜨겁던 사랑도, 잔잔한 사랑도 그렇게 사랑의 깊이만큼의 그리움의 무게를 얹어줍니다
그 그리움의 무게는 같이 했던 사랑의 깊이로만 견뎌 낼 수 있을겁니다
계곡속의 샘물처럼,
그렇게 깊게 뚫린 사랑의 구멍에는
지나간 사랑의 깊이만큼 그리움이 찰랑이며 차 있는게지요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며 작은 그리움의 샘물구멍을 하나씩 늘려갈 겁니다.
상처가 옹이가 되어 세월을 말해주듯,
그리움의 샘물은 그렇게 내 가슴을 촉촉히 해주겠지요
오늘,
우린 또 어떤 사랑을 할까요.
그리 빚어진 그리움의 샘물엔 어떤 색깔의 그리움이 찰랑거리게 될까요
사랑이 지나간 오늘은,
어떤 샘물에 손을 담궈볼까요.
세상 모든 그리움의 반짝임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