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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Sep 14. 2021

그대 - 정두리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우리는 누구입니까

빈 언덕의 자운영 꽃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 반짝이는 조약돌

이름을 얻지 못한 구석진 마을의 투명한 시냇물

일제히 흰 띠를 두르고 스스로 다가오는

첫눈입니다


우리는 무엇입니까

늘 앞질러 사랑케 하실 힘

덜어내고도 몇 배로 다시 고이는 힘

이파리도 되고 실팍한 줄기도 되고

아, 한 몫에 그대를 다 품을 수 있는 씨앗으로

남고 싶습니다


허물없이 맨발인 넉넉한 저녁입니다

뜨거운 목젖까지 알아내고도

코끝으로까지 발이 저린 우리는 나무입니다


우리는 어떤 노래입니까

이노리나무 정수리에 낭낭 걸린 노래 한 소절

아름다운 세상을 눈물 나게 하는

눈물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그대와 나는 두고두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네게로 이르는 길

네가 깨끗한 얼굴로 내게로 되돌아오는 길

그대와 나는 내리내리 사랑하는 일만

남겨 두어야 합니다


정두리 - 그대


1980년대에 솔개, 타조 등을 불렀던 이태원이란 가수가 있습니다.

그의 노래 중에 '그대'라는 노래가 있지요.

노래와 함께 그 안에 삽입되었던 동시작가 정두리 님의 '그대'라는 시에 KBS 아나운서였던 서동숙 님의 낭송이 멋지게 아련히 기억에 남는 노래입니다.


우연히 이 시를 책장에서 열었을 때, 수십 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뒤로 돌아갑니다.

음악을 다시 재생해보니 서동숙 님의 낭송이 그때의 느낌으로 그대로 다가옵니다.

그 젊은 날의 풋풋한 내음으로 다시 말랑해지는 심장을 느낍니다.


그저 흘려들었던 구절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허물없이 맨발로 다시 돌아보는 저녁,

아름다운 세상을 눈물 나게 하는

눈물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그대와 나는 두고두고 사랑해야 한다 합니다.


사랑 속의 그대였던 우리는 지금은 무엇인가요.

띠를 두르고 찾아오는 첫눈이 되어있는지,

발 저린 나무로 서 있는지,

이노리나무 정수리에 걸린 노래 한 구절 일지,

그렇게 누구의 사랑 한 조각일 우리 모두의 평화로운 오늘을 응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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