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 김선우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나는 너의 그늘을 베고 잠들었던 모양이다.
깨보니 너는 저만큼 가고.
나는 지는 햇살 속에 벌거숭이로 눈을 뜬다.
몸에게 죽음을 연습시키는 이런 시간이 좋아.
아름다운 짐승들은 떠날 때 스스로 곡기를 끊지.
너의 그림자를 베고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는
지구의 시간.
해 지자 비가 내린다
바라는 것이 없어 더없이 가벼운 비.
잠시 겹쳐진 우리는
잠시의 기억만으로 퍽 괜찮다.
별의 운명은 흐르는 것인데
흐르던 것 중에 별 아닌 것들이 더러 별이 되기도 하는
이런 시간이 좋아.
운명을 사랑하여 여기까지 온 별들과
별 아닌 것들이 함께 젖는다.
있잖니, 몸이 사라지려 하니
내가 너를 오래도록 껴안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날이야.
알게 될 날이야.
축복해.
김선우 -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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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볕이 아직도 따가운데도 그 볕에도 몸이 으슬거리며 춥습니다.
실바람에도 몸이 아프고 몸이 쑤시는 게 몸살인가 봅니다.
다리가 좀 나았다고 미뤄놓았던 집안 수리를 하다 보니 몸이 지쳤는지, 뱃속도 따끔한 게 뭔가 장염 기운이 있었는지 이틀 동안 몸살에 몸이 후들거렸습니다.
뜨거운 찜질팩을 끌어안고 하룻밤을 땀을 흘리며 누웠더니 그나마 오늘은 좀 살만합니다.
뜨거운 몸살을 앓고 난 뒤 읽어보는 김선우 시인의 '몸살'이 더 깊게 다가옵니다.
'몸에게 죽음을 연습시키는 이런 시간이 좋아.
아름다운 짐승들은 떠날 때 스스로 곡기를 끊지.'
죽으로 허기를 지운 느낌은, 곡기를 끊는 연습처럼 몸을 가볍게 합니다.
'운명을 사랑하여 여기까지 온 별들과
별 아닌 것들이 함께 젖는다.'
뜨거운 이불속 한껏 흘린 땀에 젖은 몸은 그렇게 별과 별 아닌 것과 함께 온통 젖어있었습니다.
그렇게 이틀을 끌어안은 내 몸을 일으켜
9월의 창가에 앉혀 놓습니다.
붓을 들어 화선지를 적시고,
이제는 기다리는 이도 없을 것 같지만,
습관처럼 또 오늘을 써 봅니다.
어김없이 가을이 되고,
그렇게 또 추석 명절은 다가오고,
바람은 불고,
세월은 가고,
해는 뜨고,
노을은 핍니다.
그 모든 시간 속에서 모든 이들의 평화로운 순간을 기원합니다
-사노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