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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Sep 20. 2021

너도 대나무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집 화단에 대나무를 몇 그루 키우고 있습니다.

대나무는 물만 자주 주면 쑥쑥 잘 자라니 게으른 저도 키우기 좋습니다.


대나무를 심어놓으니 바람에 스치는 대잎의 소리가 좋고,

가지와 잎이 만들어 주는 그늘이 좋습니다.

종종 어린 죽순이 뾰족 고개를 내밀면 기특하고 반가운 생명력의 신비에 감동하기도 합니다.


오늘 대나무에 물을 주다 보니 새순이 하나 보입니다.

죽순과는 사뭇 다른데, 서너 뼘쯤 뻗어올라 작은 꽃 한 송이를 달고 있습니다.

새로 난 죽순에 꽃도 피나? 하고 유심히 들여다보니, 죽순이 아니라 죽순과 거의 흡사하게 생긴, 대나무 줄기를 닮은 잡초입니다.


이 녀석들은 대나무 사이에서 대나무 모양의 줄기를 하고 대나무와 비슷한 잎을 피우며 자랍니다. 그러니 자세히 보지 않으면 대나무 줄기와 구분하기 힘듭니다. 들어보니 대나무 영양을 빨아먹는 잡초라며 가차 없이 뽑아내야 한답니다.


망설이다 녀석을 뽑아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뽑아내었지만 어쩌면  녀석들이 꼭 잡초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키우는 대나무가 아니기에 잡초 대접을 받게 되는 거죠.

아무리 예쁜 장미라도 내가 키우지 않으면 잡초이니 말이죠.

대나무 영양을 뺐어먹으며 기생한다지만, 자연에서 그리 사는 게 이 녀석뿐일까요.

기생하며 사는 인간들도 있는 마당에 말이죠.


장소를 잘 못 만난, 손길을 잘 못 만난 이름 모를 잡초를 뽑아 들고 미안한 마음에 한마디 건네줍니다.

'그래 어쩌면 너도 대나무구나.

너도 밤나무라는 이름이 있는 것처럼 너는 '너도 대나무'라 하자꾸나'


그렇게 이름 모를 잡초에게 이름 하나 지어줍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어느 하늘 아래에선 '너도 대나무' 숲 속에서 대나무가 잡초 취급받는 곳도 있을지도 모를 거라 생각하며 말이죠


싱그런 바람과 가을 햇살이 어느 구석의 잡초에게도 똑같이 내리쬐는 좋은 가을날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로운 오늘을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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