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노라면 Oct 14. 2021

심상 - 황금찬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욕구불만으로 우는 놈을

매를 쳐 보내고 나면

나뭇가지에서 노래하는 새소리도

모두 그놈의 울음소리 같다.


연필 한 자루 값은 4원

공책은 3원

7원이 없는 아버지는

종이에 그린 호랑이가 된다.


옛날의 내가

월사금 40전을 못 냈다고

보통학교에서 쫓겨 오면

말없이 우시던

어머님의 눈물이 생각난다.


그런 날

거리에서 친구를 만나도

반갑지를 않다.

수신 강화 같은 대화를 귓등으로 흘리고 돌아오면

울고 갔던 그놈이 잠들어 있다.

잠든 놈의 손을 만져 본다.

손톱 밑에 때가 까맣다.


가난한 아버지는

종이에 그린 호랑이

보릿고개에서

울음 우는

아버지는 종이호랑이


밀림으로 가라

아프리카로 가라

산중에서 군주가 되라

아! 종이호랑이여.


황금찬 - 심상

=======================

오늘 붓끝에 묻혀 볼 시를 찾다가 눈이 머문 황금찬 시인님의 '심상'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 한 구절에 수십 년이 출렁입니다.

이 시 한 장면에 세월이 얹어집니다.

연필 한 자루가 4원이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공책 한 권이 3원이던 때입니다.

그 7원에 아버지는 종이호랑이가 되고,

애꿎은 매질에 마음이 아픕니다.


그 세월이 흘러 어느덧

보릿고개에서 울던

종이호랑이 아버지의 모습에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때가 되었습니다.

40전 월사금에 울먹이던 어머니의 눈물에

나의 모습이 겹쳐지는 때가 되었습니다.


세월은 흘러,

시절은 변하여,

밀림으로 가고 싶던,

아프리카를 달리고 싶던,

산중에서 군주가 되었던

한 시절의 호랑이는,

오늘도 대나무 숲을 어슬렁 거립니다.

귓바퀴에 나비가 앉아도,

꼬리에 나비가 졸아도,

그저 오늘은 가르릉,

종이호랑이 이렵니다.


가녀린 어깨를 늘어뜨린 세상 모든 부모님들의 편안한 저녁 시간을 응원합니다

-사노라면


#황금찬 #심상 #아버지 #종이호랑이 #가난

#사노라면 #사는이야기 #손글씨 #캘리그라피 #손그림 #감성에세이 #시  #수묵일러스트 #묵상 #묵상캘리 #김경근

매거진의 이전글 너에게 - 신동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