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 함민복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함민복 -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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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라는 시를 자주 써보던 함민복 시인의 '부부'입니다.
거창한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대단한 가족의 연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조용한 이야기 하나로,
부부라는 관계를 가만히 생각하게 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결혼 생활은 긴 상을 옮기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긴 상을 옮기는 일은 그리 녹녹지 않습니다.
정말 둘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하고,
둘의 생각이 같아야 합니다
자칫하면 앞사람의 발뒤꿈치가 긴 상에 걸리기도 하고,
자칫하면 뒷사람의 무릎을 상에 찧기도 합니다.
시인의 말처럼 한 발, 또 한 발, 걸음의 속도도 맞춰야 합니다.
시인은 이 시를 결혼 주례를 보며 지었다 합니다.
어쩌면 지루하고 긴 주례사보다,
정말 마음에 와닿는,
결혼 생활의 모든 것을 담은 그런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오늘도 여기저기서 긴 상을 옮기겠지요.
이제 서로 처음 상을 옮기는 이도 있고,
상을 옮기다 딴생각하는 이도 있고,
상을 앞에 놓고 말싸움하기 바쁜 부부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익숙해지는 게 부부이겠지요.
옮겨야 할 긴 상을 오늘도 마주합니다.
오늘은 내 쪽에 조금 무게를 얹어 볼까요.
오늘도 맞은 편의 당신 손길에 감사합니다.
세상 모든 가족들의 평화로운 시간들을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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