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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Nov 05. 2021

부부 - 함민복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함민복 -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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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라는 시를 자주 써보던 함민복 시인의 '부부'입니다.

거창한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대단한 가족의 연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조용한 이야기 하나로,

부부라는 관계를 가만히 생각하게 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결혼 생활은 긴 상을 옮기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긴 상을 옮기는 일은 그리 녹녹지 않습니다.

정말 둘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하고,

둘의 생각이 같아야 합니다

자칫하면 앞사람의 발뒤꿈치가 긴 상에 걸리기도 하고,

자칫하면 뒷사람의 무릎을 상에 찧기도 합니다.

시인의 말처럼 한 발, 또 한 발, 걸음의 속도도 맞춰야 합니다.


시인은 이 시를 결혼 주례를 보며 지었다 합니다.

어쩌면 지루하고 긴 주례사보다,

정말 마음에 와닿는,

결혼 생활의 모든 것을 담은 그런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오늘도 여기저기서 긴 상을 옮기겠지요.

이제 서로 처음 상을 옮기는 이도 있고,

상을 옮기다 딴생각하는 이도 있고,

상을 앞에 놓고 말싸움하기 바쁜 부부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익숙해지는 게 부부이겠지요.


옮겨야 할 긴 상을 오늘도 마주합니다.

오늘은 내 쪽에 조금 무게를 얹어 볼까요.

오늘도 맞은 편의 당신 손길에 감사합니다.


세상 모든 가족들의 평화로운 시간들을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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