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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Nov 08. 2021

전각 - 문효치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작은 돌에 새기다가

그만 내 가슴을 쪼았다

짙게 음각된 이름


향기로운 계절과

우수의 한때

세월이

눈처럼 쌓이고

이름 위에 이제는

숨결이 살아


붉은 새살로

돋아 올랐다


전각 - 문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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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분의 요청으로 오랜만에 전각도를 꺼내 들었습니다.

한동안 붓만 잡던 손에 잡힌 돌의 느낌이 반갑습니다.

손 끝에 힘을 주어 빠각거리며 돌을 깎아 냅니다. 돌과 힘 겨루기를 하는 칼 끝 느낌이 가슴까지 전해집니다. 한 획이라도 삐끗하면 제 모양이 나오지 않으니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한 획 한 획 깎아내어 글자를 새기어 완성된 작업물을 보니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전각은 그렇게 비워냄의 예술입니다.

마음을 비워내듯, 시간을 비워내듯, 평평한 돌의 면을 비워내어야,  그 안에서 보고 싶은 글이 나옵니다.

전각 작업에 마음에 끌리는 이유는 바로 이런 비워냄의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는 일에도 전각작업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빈 글일수록 수사가 늘어납니다.

내용 없는 글일수록 중언부언이 늘어납니다.

써 놓은 글을 지워내는 일이 어렵습니다.

써 놓은 문장을 덜어내는 일이 어렵습니다.

어지러운 나의 글도 지워내고 덜어내고자 매일 반성하면서도 글 끝엔 자꾸 사족이 달립니다.


다듬어진 전각 돌을 보며 생각합니다.

나의 글에도, 나의 마음에도, 여전히  깎아내고 비워내야 할  세월의 욕심이, 채워진 교만이, 눌어붙은 미련이 가득하진 않을지.....

겨울나무가 잎을 털어내듯,

이젠 마음도 털어내고 비워내야 할까 봅니다.

깎고 덜어내어 마음 바닥에 감추어진 여유로움을 꺼내 보아야 할까 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마음에도 여유와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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