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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Nov 22. 2021

알 수 없어요 - 한용운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한용운 - 알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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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공기 내음이 달라졌습니다.

단단하게 조여진 바람이 가슴 깊숙이 들어옵니다.

머리 끝이 쨍하며 정신이 듭니다.

그 바람의 끝에 익숙한 겨울 내음이 묻어있습니다.

그렇게 계절은 바뀌나 봅니다.


며칠을 벼르던 한용운 님의 '알 수 없어요'를 화선지에 올려봅니다.

백 년의 세월을 흘러 여전히 물어보는 질문에 세월을 거친 묵상에도 선뜻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굳이 백 년의 질문에 답하지 않음은

그 질문에 이미 답이 있음이기 때문일까요.


정신을 차리게 하는 이 계절에

마음을 추스르게 하는 이 바람에

만해님의 질문이 더욱 깊게 울립니다.


겨울의 저녁놀처럼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어느 누구의 싯구절을 생각하며 세상 모든 이들의 마음에도 따스함이 가득하길 기원해 봅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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