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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Dec 02. 2021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헤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 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을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


헤쳐 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고두현 - 늦게 온 소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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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또 왜 이럽니까

시인들은 도대체 왜 이럽니까.

책장을 넘기던 손끝이 머뭇거립니다.

시큰대는 콧등 한 번  짐짓 문지릅니다.


속엣것보다 포장이 더 무거운 어머니의 소포입니다.

펼쳐져 나온 유자에선 새콤한 유자향보다,

남쪽 그 어느 햇살 아래 어머니의 내음이 더 짙게 배어납니다.


'...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네 그래야지요.

이 겨울이 지나면,

이 세월이 흐르면,

낮은 담장 아래로 봄 볕 내리쬐면,

좋은 일 있겠지요.

좋은 날 있겠지요.

그날까지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그날까지 오래오래 평안하세요.


세상 모든 부모님들의 내리사랑에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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