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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Dec 22. 2021

오래된 기도 - 이문재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 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오래된 기도 / 이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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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그렇게 기도의 순간이 있습니다.

신앙이 있건 없건,

그 깊이가 깊던 얕던,

우리 모두에게는 기도의 순간이 있습니다.


시인은 우리에게 그 기도의 순간을 이야기해 줍니다.

인간이 만든 기도의 형식이 없어도,

인간이 만든 신앙의 교리를 따지지 않아도,

살아 숨 쉬는 그 모든 순간이 기도의 순간입니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기도인 셈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그대로 구도의 길입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신앙인입니다.

무엇을 믿던,

누구를 믿던,

모든 순간 기도를 하는,

우리는 구도자의 삶입니다.


우리의 모든 순간을 기도하는 순간으로 만들어 준,

그리하여 부끄럽지 않은 마음을 갖게 해 준,

시인의 고운 시선에 감사합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로운 시간을 응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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