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봄 - 이성부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봄 - 이성부

--------------------------------------------------

눈이 그치고 나서 한동안 겨울 치고는 날이 따뜻했습니다.

옥상에서 볕을 쬐는 기분이 제법 상쾌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마치 봄이 저만치서 꿈지럭거리며 오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직 설도 남았고, 1월이 다 가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하지만 이성부 님은 '봄'이라는 시에서 그리 이야기합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봄은 온다고 말이죠.

세상을 기웃거리다가,

눈 비비며 더디게 그렇게 오고 있다 합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세상 편하게 더디게 오는 봄일까요.

아니면,

그 봄의 그림자 뒤로 따라 올 초록빛 그리움일까요.


그렇게 햇살 아래 봄을 기억해 봅니다

잊지 말고 어서 오라고

늦지 말고 어서 오라고

그렇게 저 더딘 녀석을 기억해 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따스한 하루를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이성부 #봄 #겨울

#사노라면 #사는이야기 #손그림 #감성에세이 #시 #수묵일러스트 #묵상 #묵상캘리 #김경근 #캘리에세이

keyword
이전 19화산유화 - 김소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