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노라면 Sep 03. 2018

우공이산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묻혀 캘리한조각

우공이산(愚公移山)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노력해 나간다면 결국엔 뜻을 이룰수 있다는 뜻의 한자성어로서,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 고사성어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중국의 태행(太行)과 왕옥(王屋) 두 산맥은 오래전엔 북산(北山)을 사이에 두고 지금과는 다른 곳에 있었다.

북산에 살고있던 우공(愚公) 이라는 노인이 높은 산에 가로막혀 왕래하는 데 겪는 불편을 해소하고자 두 산을 옮기기로 하였다.

둘레가 700리에 달하는 큰 산맥의 흙을 퍼담아서 왕복하는 데 1년이 걸리는 발해만(渤海灣) 까지 운반하는 작업을 하는 우공(愚公)의 모습을 보고,친구 지수(智搜)가 그만둘 것을 권유하자 우공(愚公)이 말했다.

"나는 늙었지만 나에게는 자식과 손자가 있고, 그들이 자자손손 대를 이어나갈 것이다. 하지만 산은 불어나지 않을 것이니, 대를 이어 일을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산이 깎여 평평하게 될 날이 오겠지."

산신령에게 이 말을 전해들은 옥황상제가 두 산을 멀리 옮겨주어 노인의 뜻은 성취되었다. ‘는 이야기랍니다.


어느 방송에서 150년동안 깊은 바위산을 일일이 손으로 가운데를 쪼아 길을 내었다는 체코의 어느 성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그 방송을 보면서 떠오른 것이 바로 이 단어 ‘우공이산’입니다.

산을 옮기지는 않았어도 길을 내어 양쪽을 이었으니 산을 옮겨버린 것과 같은 효과입니다.

대단한 노력입니다.


이 뿐 아니어도 간혹 이런 식의 무모한 도전 같은 진득한 수행 같은 이야기들이 간간이 들려옵니다.

꼭 토목적인 일이 아니더라도 삶의 자세에서 이렇게 꾸준한, 진득한 사람들을 종종 보곤 합니다.

평생을 한 가지 일에 매진하여 장인이 된 분들,

장인은 아니어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시는 많은 분들,

인터넷의 속도가 조금만 늦어도, 짜증내고 조급해 하는 요즘의 우리들의 찰라적인 움직임속에서, 세월보다 더 느린, 그들의 진득한 마음은 새삼 경이롭습니다.


꾸준함은 그리 어려운 듯 합니다.

더운 여름동안 폭염에 지쳐 선뜻 엄두 내지 못한 저녁 산책을 요 몇일 다시 해봅니다.

사실, 산책보다는 운동으로 해야 하지만, 우선은 산책으로 시작하자고 스스로와 협상하며움직여보지만, 부지런함보다는 게으름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요즘, 이 또한 얼마나 갈까 하는 자괴감도 듭니다. 마침 또 비소식도 들리고 말이죠^^

몇 달 간격으로 되풀이되는 다이어트나 운동에 대한 결심.

어쩌면 그렇게 결심이라도 꾸준히 하면 다행인걸까요.

이럴 때마다 산을 옮긴 우공의 꾸준함은 둘째 치고라도, 삽자루를 들고 일어서는 결단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고사에서 나온 우공(愚公)과 지수(智搜)의 이야기처럼, 어쩌면 우리 삶에서도 우직한 어리석음과 재빠른 지혜로움의 교차는 수시로 생기겠지요.

어느 것 하나 맞고 틀리지 않음이고, 그 모든 것이 삶의 다양한 바람결일겁니다.

때론 우직함이 지혜로움을 넘어서고, 때론 지혜로움이 우직함의 느린 혜안이 되어야 함이겠지요.


그렇게 뜨겁던 태양도 서늘한 바람에 식어가는 구월입니다.

청량해진 머리로 이제 추스리며 돌아볼 때인가 합니다

그동안 내가 등에 지고 옮긴 것은 삶의 커다란 산이었는지,

그저 쓸데없이 분주히 모아 얹은 삶의 근심 걱정 보따리는 아니었는지,

잠시 쉬며 돌아볼 때인가 합니다.

산을 옮기던, 제자리에서 쉬던, 우리들 모두의 발자국이 어지럽지 않은 곧은 길을 향해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세상 모든이들의 우직한 발걸음을 응원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 어디 있느냐 - 창세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