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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Sep 21. 2022

아무도 모른다 - 김사인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나의 옛 흙들은 어디로 갔을까

땡볕 아래서도 촉촉하던 그 마당과 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개울은, 따갑게 익던 자갈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앞산은, 밤이면 굴러다니던 도깨비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도 의젓하던 옛 동네어른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님들, 수국 같던 웃음 많던 나의 옛 누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배고픔들은 어디로 갔을까 설익은 가지의 그 비린내는 어디로 갔을까 시름 많던 나의 옛 젊은 어머니는


나의 옛 형님들은, 그 딴딴한 장딴지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의 옛 비석치기와 구슬치기는, 등줄기를 후려치던 빗자루는, 나의 옛 아버지의 힘센 팔뚝은, 고소해하던 옆집 가시내는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무덤들은, 흰머리 할미꽃과 사금파리 살림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봄날 저녁은 어디로 갔을까 키 큰 미루나무 아래 강아지풀들은, 낮은 굴뚝과 노곤하던 저녁연기는


나의 옛 캄캄한 골방은 어디로 갔을까 캄캄한 할아버지는, 캄캄한 기침소리와 캄캄한 고리짝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의 옛 나는 어디로 갔을까, 고무신 밖으로 발등이 새카맣던 어린 나는 어느 거리를 떠돌다 흩어졌을까


김사인 -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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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계절이 바뀝니다.


멀쩡한 옷이 얇아지고

멀쩡한 방이 추워지고

멀쩡한 물이 차가워집니다.

그렇게 성큼 가을의 발걸음이 큰 폭으로 들어섭니다.


주섬주섬 카디건 하나를 꺼내 두르고, 따뜻한 커피를 양손에 쥐어 봅니다. 이젠 이런 게 어울릴 날씨입니다.


이 아침에 김사인 님의 '아무도 모른다'의 구절을 읽어봅니다.


누구나 가슴 한편에 자리했을 그 옛 추억들을,

어디로 갔을지 모를 그 모습들을,

그리워해도 올리 없는 그 순간들을,

문득 오늘은 떠올려봅니다.

그 순간들을 돌아보는 건 어쩌면 답답한 지금의 세월에 대한 푸념이려나요.


고무신 끌던 옛날의 나를 기억해 보며, 단발머리의 옛날의 그 아이를 떠 올려보며, 오늘의 따스한 평화를 기원해 봅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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