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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Oct 25. 2022

풍장1 - 황동규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퉁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바람 속에서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황동규의 ‘풍장1’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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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님은 풍장에 관한 시를 70여 편이나 쓰셨다지요. 그중 풍장 1의 한 구절을 그려봅니다.


그렇게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바람과 놀게 한다지요.

삶과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담담하게 표현한 구절이 마음에 들어옵니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조금은 더 가깝게 느껴지는 시절입니다.

그래서인지 죽음에 대한 의미도, 마음가짐도, 준비도 생각해 볼 즈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나도 나와 가족을 위해 무언가 하나씩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해놓아야겠다는 생각에, 어제는 아내와 함께 보건소에 가서 '사전 연명 의료의향서'작성을 하고 왔습니다.

회생 불가의 상태에 이르렀을 때 불필요한 기계적 연명을 거부하겠다는 의향서 작성입니다.


뭔 대단한 변화나 결심도 아니지만, 나 스스로 나의 삶의 한 부분을 결정했다는 것 때문일지 가슴 저 한구석엔 뭔가 편안한 안심과 대견함의 마음이 반짝 켜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짐을 하나 내려놓은 기분입니다.

마음 정리하기 좋은 늦가을,

살면서 쌓아온 마음의 다른 짐도 하나씩 찾아 내려놓아야 할까 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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