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에서 - 나희덕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 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 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 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에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 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
속리산에서 -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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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님의 속리산에서의 한 구절을 그려보며 생각해 봅니다.
높은 산만이 있는 게 아니라 깊은 산도 있듯이,
삶도 그렇다 합니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네요.
어쩌면 매양 오르는 듯하던 산도 사실은 그 산 안으로 깊이 들어감이었고, 살아온 우리의 삶도 어쩌면 하루하루 깊이를 더해감이었나 봅니다.
내가 걸은 것이 높은 산이 아닌 긴 산의 모습이었음을,
내가 넘어온 산이 계곡이 아닌 지내온 시간의 굴곡이었음을 기억하며,
시인이 안내해 주는 속리산을 다시 걸어봅니다.
그 모든 산들의 깊은 삶을, 우리가 보낸 긴 상념의 시간을 돌아보는 조용한 오늘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사노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