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노라면 Nov 16. 2022

안개의 나라 - 김광규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언제나 안개가 짙은

안개의 나라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므로

안개 속에 사노라면

안개에 익숙해져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안개의 나라에서는 그러므로

보려고 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

듣지 않으면 살 수 없으므로

귀는 자꾸 커진다

하얀 안개의 귀를 가진

토끼 같은 사람들이

안개의 나라에 산다


김광규 - 안개의 나라

----------------------------

안개가 가득한 아침입니다.


회사로의 출퇴근을 따로 안 한 지 한참 되어 잊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이맘때쯤 출근길엔 종종 안개가 가득하던 기억이 납니다.


안개가 낀 세상은 평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어줍니다.

길가의 나무며 무심히 지나던 전봇대며 안갯속에선 익숙한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그러다 보니 장소는 같은 곳인데도 전혀 다른 곳에 온듯한 생소한 환경을 만들곤 하지요.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으면 세상이 그리 달라지는가 봅니다.


우리네 삶도 그럴 겁니다.

항상 곁에 있는 식구도,

든든한 사랑도,

정겨운 미소들도,

숨 쉬듯 누리던 자유도,

으쓱하던 자부심도,

그것이 보이지 않고 사라지는 순간 평범하던 삶은 또 다른 삶이 됩니다.


삶이 느슨해질 때,

인생이 덜컹거릴 때,

안개는 일상의 소중함을 기억하게 해 줍니다.

안개는 작은 소중한 것들을 다시 보게 해 줍니다.


안개가 걷히고 해가 나면, 소중한 그것들이 다시 그곳에 자리하고 있기를 소망하며,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매거진의 이전글 별 헤는 밤 - 윤동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