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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Dec 19. 2022

겨울나기 - 도종환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아침에 내린 비가 이파리 위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어는 저녁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고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하늘과 땅에서 얻은 것들 다 되돌려주고

고갯마루에서 건넛산을 바라보는 스님의 뒷모습처럼 서서

빈 가지로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이제는 꽃 한 송이 남지 않고

수레바퀴 지나간 자국 아래

부스러진 잎사귀와 끌려간 줄기의 흔적만 희미한데

그래도 뿌리 하나로 겨울을 나는 꽃들이 있다


비바람 뿌리고 눈서리 너무 길어

떨어진 잎 이 세상 거리에 황망히 흩어진 뒤

뿌리까지 얼고 만 밤

씨앗 하나 살아서 겨울을 나는 것들도 있다


이 겨울 우리 몇몇만

언 손을 마주 잡고 떨고 있는 듯해도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견디고 있다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이기고 있다


겨울나기 -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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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도 하지 않은 겨울이 부쩍 추운 올해입니다.

세월 따라 시려지는 허벅지에 손을 넣어 비비며

몸으로 마음으로 그렇게 추워하는 이 겨울에, 도종환 님의 겨울나기라는 시 한 줄이 위안이 됩니다.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견딘다 합니다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이긴다 합니다

이 겨울이 우리 몇몇만은 아니라며

이 추위가 우리 몇몇만은 아니라며

내 체온이 저 이의 손에 온기가 되고

저 이의 입김이 내 가슴을 데워주며

그렇게 건네는 작은 촛불 하나가 모여 모여 다시 뜨거운 온기를 나누는, 그렇게 견뎌내는 추운 겨울이라 합니다.


한 해를 넘기며,

지난한 겨울의 추위가 깊을수록

다시 올 봄은 더욱 따스하리란 희망을 간직한 채, 세상 모든 이들의 겨울나기를 응원합니다.


모든 이들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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