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센터에서 만난 사람이 내 시가 좋다며 자기가 내는 문예지에 실어주겠다고 했다. 3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러라고 했더니 얼마 후 전화가 왔다. 책이 나왔다며 어디로 보내줄까 묻는다. 그러고는 자기 계좌번호를 불러준다. 돈을 내고 사는 거냐니까 다들 그렇게 한다고 했다. 그런 것은 싫다고 했더니 이미 책을 다 찍었는데 이제 와서 이러면 곤란하다고 우는 소리를 했다. 곤란이라는 말의 뜻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샅아 교정해주고 싶은 강한 욕망을 느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일을 초래한 것이 내 자신의 속물적 욕망이었으니 놈만 탓할 일은 아니었다. 며칠 후 내 시가 실린 지방 문예지 200부가 집으로 배달되어왔다. 등단을 축하한다는 카드도 동봉돼 있었다. 한 부만 남기고 199부는 땔감으로 썼다. 잘 탔다. 시로 데운 구들이 따뜻했다. 어쨌든 나는 그 뒤로 시인으로 불렸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는 마음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
김영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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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소설 중에서 내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는 단락입니다.
아마 가장 공감되었으나 차마 이야기하지 못하던, 시로 데워지는 구들장의 이야기여서 일까요.
이제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남아있다는 등단제도의 양면성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긴 한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