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는 밤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시나 쓰라고
눈 딱 감고
입 꼭 다물고
다 집어치우고
시나 쓰라고
그저 살아가는
시나 쓰라고
꽃피우고 잎 날리는
그저 그런 시나 쓰라고
투사도 아니고
열사도 아니니
그렇다고 깜냥 있는
시인도 아니니
그저 돌아앉아
시나 쓰라고
오늘도 끄적끄적
시나 쓰라고
시라고 이름 지은
낙서나 쓰라고
시 쓰는 밤 - 김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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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데, 마음은 겨울 같은 시절입니다.
하루는 해가 중천 대낮인데,
마음은 어두운 저녁입니다.
촛불조차 흐릿하여 눈은 어둡고
몽당연필은 짧기만 합니다.
써 내려간 단어보다
지워진 단어가 더 많습니다
뱉어진 말보다
삼키는 말이 더 많습니다.
남겨진 말은 그저 껍데기입니다
남겨진 글은 그저 낙서입니다
오늘도 낙서 한 줄 그려놓고
삼켜진 말에 체합니다.
지독한 소화불량의 긴 밤입니다.
그럼에도,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사노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