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 쓰는 밤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시나 쓰라고

눈 딱 감고

입 꼭 다물고

다 집어치우고

시나 쓰라고

그저 살아가는

시나 쓰라고

꽃피우고 잎 날리는

그저 그런 시나 쓰라고


투사도 아니고

열사도 아니니

그렇다고 깜냥 있는

시인도 아니니

그저 돌아앉아

시나 쓰라고

오늘도 끄적끄적

시나 쓰라고

시라고 이름 지은

낙서나 쓰라고


시 쓰는 밤 - 김경근

----------------------------

계절은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데, 마음은 겨울 같은 시절입니다.

하루는 해가 중천 대낮인데,

마음은 어두운 저녁입니다.


촛불조차 흐릿하여 눈은 어둡고

몽당연필은 짧기만 합니다.

써 내려간 단어보다

지워진 단어가 더 많습니다

뱉어진 말보다

삼키는 말이 더 많습니다.


남겨진 말은 그저 껍데기입니다

남겨진 글은 그저 낙서입니다

오늘도 낙서 한 줄 그려놓고

삼켜진 말에 체합니다.


지독한 소화불량의 긴 밤입니다.


그럼에도,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동행 - 이수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