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끝물 -문성해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여문 씨앗들을 품은 호박 옆구리가 굵어지고

매미들 날개가 너덜거리고

쌍쌍이 묶인 잠자리들이 저릿저릿 날아다닌다


얽은 자두를 먹던 어미는 씨앗에 이가 닿았는지 진저리치고

알을 품은 사마귀들이 뒤뚱거리며 벽에 오른다


목백일홍이 붉게 타오르는 수돗가에서

끝물인 아비가 늙은 오이 한 개를 따와서 씻고 있다


여름 끝물 -문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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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워 내리는 비에,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결이 제법 식어있어 시원합니다.

언뜻 이제 여름 끝물일까 생각해 봅니다.


붓 끝에 문성해님의 '여름 끝물' 한 조각을 묻히고 붉은 백일홍 한 송이 얹어 봅니다.


여름 끝물의 한 풍경이라 읽던 시가 '끝물인 아비'의 오이 씻는 장면에서 머뭇거립니다.

그 끝물에서 익숙한 끝물을 만나서일까요.

그렇게 여름은 세상 모든 이들에게 한 철이겠지요.

그 여름의 끝물은 어쩌면 그렇게 허우적거리는 삶의 노을이기도 한가 봅니다.


찬란한 여름 동안

품었던 씨앗들도

쌍쌍으로 날던 잠자리들도

알을 품은 사마귀들도

제철을 보내고

이젠 끝물처럼

씻기는 늙은 오이로 계절을 맞이합니다.


어지러운 세상 걱정보다 더 귀하게 느껴지는, 비 오는 여름 끝물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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