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비워내기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방을 정리하다 보니 구석에 작은 가방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습니다.

올 여름 여행때 가지고 갔던 작은 배낭입니다.


며칠 푹 쉬는 게 목적인 여행이었기에 딱히 쌀 짐도 별로 없었던 이번 여행이었습니다.

단지 왔다 갔다 할 때 간단히 소품을 넣고 다닐 작은 가방 하나를 준비하여 들고 다니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그 작은 가방에 생각보다 들어갈게 많습니다.


잠깐 정보 찾을 일이 있을 때 필요한 태블릿 하나, 혹시 전화기 배터리가 모자랄 수 있으니 보조배터리도 여유 있게 두 개, 심심할 때 볼 책도 한 권, 해가 쩅하니 선글라스도 하나, 날도 더우니 수건 하나, 마실 물도 아내 거와 같이 두병 넣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은 가방이 제법 무겁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넣어가자 하며 메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날도 덥고 짐이 무거우니 다닐 때마다 번잡스럽기도 하구 힘이 듭니다. 중요한 건 돌아다니는 일정 동안 가방에 넣어둔 물건은 물을 제외하곤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겁니다. 만에 하나 필요할 일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물 한 병만 들고나왔으면 한결 더 쾌적하고 수월한 여행이 됐을 것 같기도 했습니다.

짐을 줄이려던 작은 가방이 오히려 짐이 된 셈입니다.


그렇게 제 역할도 못했던 가방을 잘 정리해 넣어두며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내 마음에도 이렇게 불필요한 생각들을 잔뜩 넣어두고 있지는 않을까 하고 말이지요.


가만히 마음의 지퍼를 열어봅니다

한쪽 구석에 세상에의 쓸데없는 오지랖 한 뭉치,

한 번도 꺼낸 적 없는 혼자만의 고집.

똘똘 뭉쳐진 나의 욕심,

바닥에 눌어붙은 짙은 미련,

잔뜩 부피만 커진 공연한 망상,

삐죽이 고개 내민 게으른 교만들,

어쩌면 나의 마음 가방엔 이런 쓸데없는 것들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사는 날들이 그리 무거웠을지도 모릅니다.


비 오는 오후,

가방을 챙겨 넣으며 내 마음도 도닥도닥 정리해 봅니다.

한 번에 툴툴 꺼내 털어버리지는 못해도, 조금씩 덜어내 보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홀가분해진 가벼운 마음을 들여다볼 날도 있을 테니 말이지요.

가방을 비우며, 어지러워진 마음도 같이 정리해 보는 오후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로운 하루를 기원합니다

–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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