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고지중 巧固之中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갈수록 글씨가 어려워져 쉽게 붓을 잡지 못합니다. 답보에 대한 불만과 변화의 충동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무리하게 변화를 시도하면

자칫 교(巧)로 흘러 아류(亞流)가 되기 쉽고, 반대로 방만(放漫)한 반복은 자칫 고(固)가 되어 답보하기 때문입니다.

교(巧)는 그 속에 인생이 담기지 않은 껍데기이며,

고(固)는 자기를 기준으로 삼는

아집에 불과한 것이고 보면

역시 그 중(中)을 잡음이 요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서체란 어느덧 그 '사람'의 성정이나 사상의 일부를 이루는 것으로 결국은 그 '사람'과 함께 변화 발전해가는 것이 틀림없음을 알겠습니다.


처음처럼 中 - 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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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에 먹을 묻히고 글을 그리다 보면 순간순간 많은 생각이 듭니다.

어떤 때는 고요하게 쓰이는 글에 집중하게도 되고, 어떤 날은 글자에 멋을 내보려 합니다. 어떤 날은 제 붓끝이 영 맘에 안 들어 쓰이는 글자마다 마뜩지 않기도 합니다.


신영복 님의 언약이란 책에서 서체에 대한 제 답답한 마음을 그대로 대변해 준 글을 보니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서체의 대가도 비슷한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생각하니 이게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 생각하니 살짝 안심도 됩니다.


서체란 결국 그 사람의 성정이나 사상의 일부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대목을 읽으며, 나의 붓길에 담긴 내 성정은 어떨까 고민하며 한 번 더 붓끝을 다듬어 봅니다.

교巧나 고固가 아닌 중中의 마음이 가득하길 기원하면서 말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단단한 중中의 마음을 응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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