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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을 치우는 마음으로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카페의 아침 준비를 마치고 책상에 앉습니다.

오늘의 글감도 생각하고 작업을 하려 폰을 엽니다.

예전에 올린 글에 댓글이 하나 떠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열어봅니다.

‘… 풉, 제대로 알고 쓰시길,,,,’

내가 올린 글의 사실 관계가 틀리다며 이렇게 몇 줄의 댓글을 누군가가 올렸습니다.

뭐 생각이야 다 다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의견 감사합니다’ 하고 답글을 보내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살짝 화가 납니다.

‘내가 뭐 학력위조해가며 복사 논문 쓴 것도 아닌데 뭐 이런 비아냥까지 들어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도대체 어떤 놈이 새벽 세시에 정성스럽게 이런 댓글을 쓴 거야’ 하며 댓글을 째려봅니다.


그러다 가만히 내 마음을 봅니다,

아침을 열었던 상쾌한 기분이 불쾌한 감정으로 스멀스멀 변해가는 게 보입니다.

안되겠다 싶어 누군가 싸지른 똥을 치우는 마음으로 댓글을 삭제합니다.

그저 똥이다 하고 조용히 치우면 쓴 글은 똥이 된다 생각했습니다.

그저 쓰레기다 하고 치우면 쓴 글은 쓰레기가 된다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 글을 '똥이다...' 하고 치우면 글을 쓴 자가 똥 싼 놈이 되는 것이지라 마음 먹으니 맘이 편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감정의 쓰레기 같은 댓글 하나 지우고, 가만히 커피 한 잔을 내리며 생각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생각들이 다 올바르게 보일 수 없고, 세상의 수많은 목소리들이 다 올바르게 들릴 수 없듯이, 내가 그간 써온 글도, 내가 그간 나눈 마음들도, 보기에 따라선, 받기에 따라선 누군가에겐 쓰레기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어쩌면 그동안 써 온 내 글의 매너리즘에, 그동안 써 온 내 글의 독선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어느 득도한 고승이 , ‘네가 쓴 글은 똥 덩어리가 아니더냐’ 하는 화두를 툭 던지듯, 귀한 새벽시간에 똥 한 덩어리 툭 던지고 간 게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듭니다.

그리 생각하니 그 댓글 쓴 이에게 감사한 마음도 듭니다.

그리 생각하니 내 글들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내 글의 소란스러움이,

내 글의 가벼움이,

내 글의 매너리즘이 부끄러워집니다.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하던 내 모습을 거울로 마주해 보니 부끄러워집니다.


새삼 붓 끝을 다듬어봅니다

새삼 먹을 정갈히 저어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다듬기 위함임을 다시 묵상해 봅니다.


세상 모든 똥 덩어리가 주는 가르침을 기억하며, 모든 마음에 평화가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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